◆박광선 논설위원
‘기술한국’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뿌리깊은 인식 때문인지 엔지니어의 사회적 지위가 의사나 판검사보다 낮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책기조가 무역입국에서 기술입국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엔지니어들은 여전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95년 전체의 43%이던 청소년의 이공계 대학 지원율이 2002년에는 27%로, 서울대 공대의 올해 등록률이 지난해보다 10% 이상 떨어지는 등 이공계를 지망하는 학생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또 일류대 공대의 평균 경쟁률이 1.3∼1.5 대 1로, 합격 후 다른 데로 가는 사람을 감안하면 사실상 정원 미달이다.
이공계열 기피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나 이처럼 심각한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는 IMF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과학기술자들이 해고되는 등 구조조정 과정에서 거리로 내몰리고 박사학위를 획득해도 교수직이 확실치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노무직과 엔지니어의 임금 격차가 크게 줄어들고 직업 전망이 불투명해진 것도 이공계를 기피하게 된 요인의 하나다.
물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정부가 기울여왔던 노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장학금 지원을 통해 우수 학생을 이공계로 유도하고 병역특례도 늘렸다. 하지만 학생과 부모가 과학기술자의 장래를 어둡게 생각하는 마당에 교육정책만으로 이공계 대학의 질 저하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의 공학교육이 산업현장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공계 졸업생에 대한 기업의 신뢰가 떨어지고 취업률이 하락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대다수 신입사원이 1∼2년의 강도 높은 훈련을 거쳐야 제 몫을 하는 것도 교과서 중심으로 공학교육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업과 대학 사이에 인력수급이나 교육, 진로지도에 대한 정보교류와 의견교환도 거의 없다는 지적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경제를 이만큼 키운 것은 기술력이다. 더욱이 지금은 세계적인 기술전쟁시대다. 기업의 기술혁신을 담당할 고급 전문인력이 기업은 물론이고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연구기술 인력을 중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기술력에서 앞서지 못하면 초일류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단순히 관리 능력만 갖췄다고 해서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르던 시대는 지났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경영환경과 국제경쟁 관계를 고려할 때 관리와 기술력을 두루 갖춘 사람을 중용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최근들어 관리와 연구기술 능력을 겸비한 실무형 임원이 CEO 0순위로 꼽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사실 기업들이 연구인력들을 중용하는 것은 유능한 연구임원 확보가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연구개발(R&D)에 투자하지 않으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을 물론이고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없다.
요즘들어 용어조차 생소했던 최고기술책임자(CTO), 다시 말해 회사의 기술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임원의 존재가 날이 갈수록 부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처럼 기술우위 없이는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대다수 기업이 연구기술 인력을 중용하는 등 전문지식과 사업능력이 결합된 사람을 필요로 하나 작금의 우리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유능한 기술인력 양성 및 배출은 고사하고 그동안 쌓아왔던 기반조차 위태로울 정도다.
지금부터라도 이공계 출신을 정부 고위직에 적극 발탁하는 등 과학기술자를 우대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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