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시장의 침체 때문인지, 컴필레이션의 유행 때문인지 ‘신인’이란 말이 주는 호기심도 없고 심지어 그 말 자체가 듣기 싫어진 상황이다.
음악이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신인이 고개를 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댄스나 발라드와 같은 장르가 아닌 여전히 변방에 머물고 있는 록이라면 사정은 더더욱 나쁘다. 현재 록은 다수의 음악 대중에게 휴식과 재미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신인 록밴드가 나왔다면 그것은 우리 현실을 감안할 때 가히 ‘최악의 조합’일 것이다. 생소한 이름인 ‘비갠 후’는 바로 신인 록그룹이다. 우리 음반시장이 바닥을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으니 좋게 보면 용기가 가상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무모해 보인다. ‘신인도 안 되는데 게다가 록이라니.’
비갠 후 멤버들은 그런 현실을 오히려 호기로 판단한다. “록이 안 된다는 생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음반경기가 나쁜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어떤 난관도 좋은 음악, 성실한 음악 앞에서는 굴복한다고 본다. 우리는 장르와 분위기를 넘어 양질의 음악을 선사하고자 한다.”
비갠 후는 신인그룹이지만 신인이라고 할 수 없다. 리더인 기타리스트 유병열은 바로 90년대를 대표하는 록그룹인 ‘윤도현 밴드’의 음악을 결정지은 인물이다.
그가 쓰고 연주한 곡으로 윤도현은 포효했다. 드러머 나성호도 안치환의 백업밴드 ‘자유’에서 활동했다. 이름은 낯설지만 세션쪽에서는 알아주는 연주자다. 둘 모두 관록의 신인인 셈이다. 윤도현 밴드를 떠난 유병열이 나성호와 의기투합하고 보컬 한호훈과 베이스 김태일을 만나 그룹라인업을 완성했다.
음악은 편안하고 세련된 록이다.
하드코어나 모던 록, 헤비메탈 같은 강성의 록도, 그렇다고 비주얼 록도 아니다. 그러니까 전혀 긴장할 필요없이 단지 이들의 정리가 잘 된 사운드에 귀를 맡기면 된다. 서구 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지난 80년대 저니(Journey)와 같은 그룹을 떠올릴지 모른다. 대중적 기운이 완연한 그런 록이야말로 멤버들이 학창시절에 좋아하던 음악이다. 현재의 트렌드가 아닌 자신들 가슴 속에 살아 있는 과거의 소리로 돌아간 것이다.
타이틀곡인 ‘소망’을 비롯해 ‘아름다운 날에’ ‘꿈이었으면’ 같은 느린 록발라드와 ‘다시 사는 거야’ ‘희망은 있나’ 같은 빠른 곡이 적절히 안배돼 있다. 보컬 한호훈은 다채로운 음색으로 양 갈래를 잘 소화해냈다. 그처럼 보컬색조가 살아난 이유는 압권인 연주의 리듬감 때문이다. ‘다시 사는 거야’는 지난해 영화 ‘킬러들의 수다’에 삽입돼 이미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이 앨범은 올해를 밝힐 베스트 록 앨범으로 손색이 없다. 깔끔한 록으로 이들은 멀어져간 음악대중이 다시 돌아오기를 재촉한다. 우리 록이 비갠 후의 청명한 날씨를 보일 수 있기를 바란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희망은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http://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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