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는 곧 서진(西進)의 역사다. 늘 서쪽을 향해 달려왔다.
당은 서역을 정벌했으며 몽골은 유럽을 누볐다. 미개한 땅, 유럽도 동양의 문물을 받아들여 어느날 강성해졌다.
근세와 근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스페인·포르투갈·네델란드·영국은 순서만 바꿔가며 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했다.
20세기는 누가 뭐라해도 아메리카의 시대. 유럽 강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미국은 앞선 경제와 군사력을 앞세워 세계를 제패했다. 2차대전 이후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도 눈을 돌렸다.
정치·군사는 몰라도 경제에서 일본은 미국의 적자(嫡子)였다. 20세기 후반 세계 경제를 이끈 전자산업을 주도하면서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일본 군벌의 꿈 ‘대동아공영권’을 군사력이 아닌 경제력으로 이루는 듯했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90년대 일본이 10년간의 침체에 휩싸일 동안 한국과 대만 등 신흥 경제개발국들이 일본 자리를 대신하겠다고 나섰다.
21세기에 들어서다 잠든 대륙, 중국도 꿈틀거리고 있다. 미국의 독주체제가 굳혀지자마자 중국은 이념의 벽을 허물고 시장 경제에 들어왔다.
중국은 특히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세계 각국에 퍼진 화교자본을 빨아들이며 ‘세계의 공장’이 되어가고 있다.
중국의 가세로 동북아 지역은 미국을 견제할 유일한 경제세력권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것은 미국이다. 동북아 지역도 미국 경제의 우산아래 놓여 있다. 일본과 한국·대만 등은 미국 경제의 감기에도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이 지역 경제권에 편입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의 등장으로 자급자족의 길이 열렸다.
특히 21세기 경제의 축인 정보기술(IT) 산업에서 동북아 지역의 자생력은 유럽을 크게 웃돈다. 한국과 대만의 생산기술과 중국의 원가경쟁력은 세계 최고다. 일본과 중국의 기초 기술 수준도 미국에 버금간다.
21세기 중반엔 동아시아 경제권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경제의 엔진이 될 것이라는 게 미래학자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몽골제국 이후 무려 8세기만에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원점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였으나 ‘오월동주(吳越同舟)’다.
일본은 한국과, 한국은 중국과 치열한 경쟁 관계다. 20세기의 갈등의 역사가 21세기에도 이 지역 국가들의 화합을 가로막는다.
미국도 영원한 권세를 누리기 위해 호시탐탐 이 지역 국가들간의 틈을 벌려놓으려 할 것이다. 또 IT핵심기술과 멀찌감치 앞선 콘텐츠, 서비스산업을 앞장세워 동북아 국가와의 격차를 계속 유지하며 패권국으로 남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강자를 앞에 두고 동북아 국가들은 이제 힘을 합치려 한다. 최근 한·중·일 3국이 동북아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합종연횡’의 신호탄이다.
3국은 중국의 시장, 한국의 생산기술, 일본의 기초기술을 접목시키면 미국과 충분히 겨룰 만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동북아 국가들은 저마다 기적을 만들어왔다. 주어진 기회를 잘 포착했다.
이제는 모든 동북아 국가들이 같은 기적을 만들 기회가 왔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이 지역 국가들이 근면과 열의로 높은 수출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한편 부정부패의 척결, 선진 경영기법의 토착화에 힘을 쓰면 분명 낙관적이다.
EU와 미국은 새로운 ‘황화(黃禍)’를 불러올 수 있는 동북아 지역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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