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 논설실장 hdlee@etnews.co.kr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다. 촌시를 다퉈야 할 정도의 일이 있다면 당연히 바빠야 한다. 그렇지도 않은데 바쁜 척하는 사람이 많다면 정상이 아니다. 가장 큰 원인은 우리의 잘못된 습관 때문이다. 그 습관의 중심에 조급증이 서 있다.
이를 입증하듯 우리 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의 하나가 ‘빨리빨리’다. 우리의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인 언어행태다. 아침부터 저녁 잠잘 때까지 이 단어가 빠지는 일은 거의 없다. “빨리 일어나라” “빨리 밥 먹어라” “빨리 업무를 끝내라” “빨리 가자” “빨리 불끄고 자라” 등 그야말로 ‘빨리’로 시작해 ‘빨리’로 하루가 끝난다. 이 바람에 우리는 어릴 적부터 ‘빨리’란 단어를 입에 물고 산다. 조급증이 은연중 우리 삶 속으로 스며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 결과 현대인은 여유가 없다는 지적을 받는다. 마치 죄짓고 쫓기는 사람처럼 허둥대며 살아간다.
흔히 현대를 속도의 시대라고 한다. 그만큼 변화가 빠르고 다양하다. 사람이 시대의 흐름에 맞게 의식이나 관습을 바꾸는 것은 생존의 지혜다. 인간이 속도감의 속성에 적응하지 못하면 치열한 삶의 경쟁에서 탈락할 수 있다.
우리가 단기간에 개발도상국의 굴레를 벗은 일이나 인터넷 분야에서 세계강국의 위치를 확보한 것은 바로 ‘빨리 빨리’의 긍정적인 성과다. 초고속 인터넷은 자타가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가 세계 최고수준이다. 이같은 IT 분야의 급성장은 남보다 빨리 빨리 일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빨리’로 대변되는 조급함의 그늘은 심각하다. 조금함이 졸속이나 건성건성으로 이어지고 시행착오를 잉태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과정은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 인적·물적인 부담이 더 많다. 그래도 원상회복은 힘들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이해집단간의 앙금이나 갈등은 치유가 어렵다.
성수대교나 신행주대교 붕괴사고는 조급함이 불러온 대표적인 본보기다.
최근의 교육정책이나 노동정책·의료보험정책·남북관계 등을 둘러싼 내부 갈등과 대립도 조급증이 한 몫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선심정책이 국민혈세의 낭비로 연결된 일도 그렇다. 단기간에 지역을 살린다며 일을 지나치게 서둘러 결국 빚만 지고 만 셈이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 차지다. 실타래처럼 엉켜진 이런 각종 현안을 해결하려면 얼마나 많을 시간과 토론 과정을 거쳐야 할지 모른다. 이해집단 간의 극단을 배제하고 절충점을 찾는 일이 그리 쉬운가.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 매어 못 쓴다’고 한다. 일에는 과정이 있다. 그런 과정을 생략한 채 급하게 일을 처리하면 탈이 생기는 법이다. 어떤 일이든 빨리 하면서도 완벽하게 추진한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렇게 못하니 문제다.
우리는 지금 나라 안팎으로 절박한 상황이다. 국내 정치는 시험대에 섰다. 경제난에다 취업난, 제조업의 동공화 현상, 지역주의, 도덕성 타락 등이 심각하다. 중국의 WTO가입과 뉴라운드 출범에 따른 대책 마련도 발등의 불이다.
이런 변화는 양날의 칼이다. 우리한테는 위기이자 기회이다. 정치권이나 정부는 이제 한건 하겠다는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 당리당략이 아닌 중용의 도를 실천해야 한다. 중용은 모두를 포괄해 공동분모를 찾는 일이다. 조급증도 버리고 지나친 만만디도 아닌 최상의 접점을 모색해야 한다. 편을 가르는 일이 아니다. 통합하는 일을 해야 한다.
채근담에 이런 말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공(功)을 세우려 하지 말라. 잘못이 없으면 그것이 공이다. 남이 네 베품에 감동받기를 바라지 말라. 남한테 원망을 듣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덕(德)이다.’
이제 졸속과 한건주의의 조급증에서 벗어나자. 그 대신 중용의 도를 터득해 갈등과 대립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국민 화합과 국가 발전의 첫째 첨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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