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밸리 `군웅할거`

 ‘서울·수도권 지역에 벤처밸리 전국시대(戰國時代)가 온다.’

 벤처업계의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그동안 국내 벤처성장의 상징이 돼 왔던 테헤란밸리가 흔들리고 있다. 테헤란을 떠난 벤처들이 각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유인책과 맞물려 서울은 물론 경기도 일원의 신흥 벤처타운에 둥지를 틀면서 ‘포스트(post) 테헤란시대’가 예고되고 있다. 수익모델 창출의 어려움에 따른 경영여건 악화, 교통난, 높은 임대료, 낮은 연구개발(R&D) 인프라 접근성 등으로 더이상 벤처 메카로서의 매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현황=서울 및 수도권 소재 벤처기업은 8월말 현재 7859개(중기청 발표)로 전체(1만772개)의 약 73%가 집중돼 있다. 이들 벤처가 하나 둘 모여 형성된 벤처밸리만도 서울에 키콕스벤처센터를 중심으로 한 구로밸리, 서울대 주변의 관악밸리, 홍릉밸리, 성동밸리, 송파·방이밸리, 양재·포이밸리, 보라매밸리, 여의도밸리 등 10개에 육박하고 있다.

 또 2263개 벤처가 포진한 경기도 일대의 제조형 벤처를 중심으로 분당·안양·수서·부천·안산 등에 벤처밸리가 형성되고 있고 최근 정부와 여당이 20만평 규모로 벤처단지를 조성키로 확정한 판교 지역도 신흥 벤처밸리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구로밸리는 구로구와 금천구 일대의 옛 구로공단 지역이 지난해 12월 키콕스벤처센터의 설립을 시작으로 제조벤처 중심의 디지털 산업단지로 탈바꿈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특히 이 지역엔 2006년까지 구로 1단지 8만평을 벤처전문단지로 육성한다는 계획 아래 한신IT타워·동일테크노타운·에이스테크노타운·대륭테크노타운 등 22개 아파트형 공장이 들어섰거나 건립 예정이라 평당 300만원대의 저렴한 임대료와 편리한 교통망 등 이점을 찾아 첨단 제조벤처 유입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대의 인적 네트워크에 기반한 관악밸리도 올초부터 벤처의 유입이 꾸준한 지역으로 현재 IT·바이오 업종을 중심으로 295개 기업들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지자체로는 보기 드물게 관악구청이 벤처추진실과 창업보육센터라는 조직을 갖추고 벤처의 지역경제권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양대·한양대 벤처동문회·성동구 등이 주축이 돼 조성되고 있는 성동밸리는 성동교∼뚝섬∼성수역∼동이로 등에 걸쳐 200여 벤처기업이 모인 신흥 벤처타운으로 9월말 벤처밸리 선포식을 갖고 본격적인 밸리구축에 나섰다.

 홍릉밸리는 지난 1월 재단법인 홍릉밸리를 설립, ‘부품·소재 분야’에 특화된 밸리 조성에 들어갔다. 현재 약 80개 벤처기업이 입주해 있는 홍릉밸리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고려대 등 인근 7개 대학, 국방연·산업기술정보원 등 연구기관을 묶어 연구개발 중심의 벤처밸리를 조성한다는 청사진을 펼치고 있다.

 성남시가 지난 99년부터 적극 조성해온 분당밸리는 편리한 교통과 입주조건, 쾌적한 환경 그리고 인근 양산시설을 이점으로 ‘지식·산업 복합단지’를 지향하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은 한국통신 본사, SK텔레콤·삼성전자·포스데이타 등 대기업 연구소 등과 함께 두루넷·GNG텔레콤·터보테크 등 정보통신 관련 첨단기업들이 입주해 밤을 밝히고 있다. 현재 분당밸리엔 210여개 벤처기업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성남시는 향후 첨단 벤처빌딩 건립과 각종 세제혜택, 입주금 융자 알선 등으로 벤처유치에 적극 나서 오는 2005년까지 400여 첨단 벤처로 구성된 테크노단지를 만든다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문제는 없나=벤처밸리 조성은 비단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얘기는 아니다. 대덕밸리를 비롯해 춘천·대구 등 지자체의 지역경제 활성화 정책과 맞물려 전국적으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이러한 경쟁적인 밸리육성 노력이 거시적인 시각에서 보면 자칫 또다른 힘의 낭비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와 함께 미국 실리콘밸리나 영국 사이언스파크, 프랑스의 소피아 등 선진국의 벤처밸리와 비교해 한국형 벤처밸리의 모델에 대한 고민과 정부차원의 조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현재 조성되고 있는 밸리들은 연구력과 기술·마케팅·자본 등이 시스템화하기보다 입주조건에 따른 단순한 벤처기업들의 집적화 내지 지역화 수준에 그쳐 각 밸리가 갖는 차별화된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중복·경쟁하고 있는 양상이다.

 벤처기업협회 장흥순 회장은 “벤처밸리의 성공요인은 다양한 벤처창업 유인제도와 대학·연구소 등의 우수인력, 풍부한 벤처캐피털의 네트워크에 있다”며 “지역별 특성과 장점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밸리 조성사업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환기자 victolee@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