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업계가 메모리 반도체에 편중된 산업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추진해온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산업이 반도체 경기위축과 투자유치 차질로 초기부터 난항에 빠졌다.
아남반도체는 TI·도시바 등 주고객들의 주문량이 줄면서 이번 추석연휴를 이용해 생산라인 가동을 일시 중단키로 했다. 아남반도체는 지난해말부터 반도체시장이 악화되면서 아직도 2, 3개의 고객사에 월 3만장 규모 생산라인의 절반밖에 가동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 4월 상업생산을 시작한 동부전자는 은행권 신디케이트론을 통해 4억5000만달러를 지난달 말까지 확보, 월 생산능력을 2만장 규모로 늘릴 계획이었으나 자금조달이 늦어져 시험생산 수준인 월 5000장의 생산규모에 그쳤다. 동부전자는 연말까지 신디케이트론과는 별도로 3억1000만달러의 해외자금을 유치하기로 하고 스위스계 CSFB를 주관사로 선정했으나 테러사태 여파 등 대내외 상황이 어려워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하이닉스반도체도 D램사업에서 파운드리사업을 확대하기로 하고 메모리 생산라인을 파운드리 라인으로 전환하고 있으나 고객확보와 추가설비투자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하이닉스반도체와 같은 또다른 부실을 초래, 반도체산업뿐만 아니라 국내 경제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배경=국내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업체들이 초기부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우선 반도체시장 급락이라는 외부적인 요인이 가장 큰 원인이다. 아남반도체가 양산을 시작한 지난해초만 해도 반도체 파운드리사업은 2005년까지 연평균 30% 이상 급성장할 것으로 기대됐고 동부전자가 상업생산을 시작한 지난 4월만 해도 여타 부문과는 달리 파운드리 시장만큼은 10% 가량 성장세가 예상됐다.
그러나 지속적인 시장악화로 종합반도체업체(IDM)들의 주문량이 급감하면서 대만 TSMC나 UMC 같은 선두업체도 지난 2분기에는 가동률이 50% 미만으로 떨어지는 등 급락세를 보였다. 대만증시가 이들 업체의 실적악화 경고로 몇차례 폭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업체들의 문제는 대만업체처럼 단순히 시장악화라는 일시적인 요인 때문이 아니라 아직까지 자생력 있는 사업구조를 갖추지 못한 초기에 복병을 만났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가능성은 없는가=비메모리 파운드리는 도시바·모토로라 같은 IDM이 외주 생산량을 50% 이상 확대하겠다는 전략을 강화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최근 시장조사기관인 세미코리서치는 올해 파운드리 시장이 지난해보다 25.7%(출하량 948만개, 8인치 웨이퍼 기준) 정도 줄어들겠지만 내년에는 37.1%(1299만개), 오는 2003년에는 23%(1598만개) 정도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국내 업체들은 대만이나 말레이시아·싱가포르 업체보다 안정적인 입지조건과 우수한 노동력을 갖춘 데다 D램사업에서 쌓은 다양한 공정기술 등이 파운드리사업에서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는 점도 꼽고 있다.
◇대안=아남반도체나 동부전자가 당장 유동성 위기를 겪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현 사업규모로는 자생력을 갖추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아직 우리 업체들은 고객다양화나 공정기술 확보, 파운드리 서비스에 필요한 지적재산(IP) 데이터베이스(DB) 등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이 때문에 추가 투자 없이 버티기식으로만 나간다면 지금보다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 업체가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뒤따라 주어야 한다. 말레이시아의 퍼스실리콘이나 실테라, 싱가포르차터드 같은 후발 신생업체들은 정부가 50%의 지분을 가진 주주로 참여했다. 공단조성과 각종 세제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정부가 IMF때 빅딜로 반도체산업의 구조조정에 나섰다면 이젠 이를 대신할 유망산업에 투자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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