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피아>소유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민음사 펴냄.

 

 ‘엔트로피’ ‘노동의 종말’ ‘바이오테크 시대’ 등의 저자인 제레미 리프킨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사회비평가이자 미래연구가다.

 리프킨은 이 책의 서론에서 ‘소유의 시대는 가고 접속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한다. 의사소통망의 확장과 더불어 물질보다 정신, 교환보다 체험, 사유보다 공유, 공간보다 시간, 노동보다 놀이가 보다 큰 가치를 갖게 된다는 것. 저자는 이같은 일련의 이행과정을 ‘소유에서 접속’이라는 표현으로 응축한다.

 접속의 시대에는 자산을 장기적으로 보유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오히려 불리하다. 이런 주장은 무어의 법칙이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지능형 상품은 물론 자동차, 냉장고, 가구, 백과사전 등 일용 상품에 이르기까지 해당되는 현상이다. 할부금을 미처 갚기도 전에 퇴물화돼버리는 물품을 왜 사들여 애지중지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또한 접속의 시대에는 ‘규모의 경제’가 ‘속도의 경제’로 전환된다. 기업은 오랜 기간동안 건전성·우량성의 지표로 간주돼온 용지·설비·기계·현물·유동자산 등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무게 없는 경제’에 걸맞은 다이어트에 매진해야 한다.

 새로 부상하는 네트워크형 경제체제에서는 이윤창출과 직결되지 않는 인프라 구축 비용을 절감하고 계약을 통해 첨단설비를 채택해야 한다. 또 경제환경의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리스나 아웃소싱을 선호하게 된다.

 이런 ‘탈(脫) 물질화’가 촉진되는 시대의 전형적 선도기업으로 리프킨은 나이키사를 지적한다. 내세울만한 공장도 기계도 설비도 없는 나이키 본사는 단지 세계 각처에 산재한 ‘생산협력업체’들과 접속돼 있는 연구 조직에 불과하다. 법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란 디자인 기법 및 광고마케팅 원리뿐이다. 더구나 90년대 들어서 현대 기업활동의 중추로 꼽혀온 광고마케팅 업무까지 정리함으로써 지금의 나이키는 운동화와 같은 물리적 상품이 아닌 ‘나이키’라는 개념을 파는 회사로 바뀌었다.

 이같은 접속의 논리는 경제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생활이나 의식세계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전까지 효율적인 물품 생산과 교환이 중시됐다면 이제부터는 생각과 마음의 관리가 새로운 부가가치의 원천으로 대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리프킨은 향후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예속이 완화될 것이라고 낙관적 전망과는 상이한 견해를 토로한다. 단적 사례로 지난 30여년간 급성장한 체인점의 융성을 든다. 체인 가맹점은 종전의 단독 자본가가 가지고 있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다. 다만 본사가 제시하는 약관 하에 일정기간 ‘접속’할 수 있는 기회만 부여받고 있다. 한마디로 유형자산에 대해 제한적 권리를 확보하는 대신 무형자산에 관한 권리는 전적으로 포기한 상황이라는 주장이다.

 ‘문화를 고갈시키는 자본주의’라는 표제를 붙인 제2부에서 저자는 디지털 통신기술을 근간으로 하는 하이퍼 자본주의 체제를 문화 자본주의 체제로 재규정하고 그 구성·동향·전망 등을 상세히 설명한다. 접속 경제의 등장과 함께 지금까지 인류역사상 단 한번도 시장에 흡수된 적 없는 문화가 경제영역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 ‘산업자본주의에서 문화자본주의로’라는 명제로 축약할 수 있는 이같은 문화의 상품화 경향은 완전성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문화자본주의시대에 가치창조에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 리프킨은 생활체험을 든다. 체험산업·체험경제야말로 대량생산체제로 인해 그 효용성이 한계에 달한 물질적 상품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이윤창출의 보고라는 설명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체험산업은 토지의 상품화(인클로저 운동)에서 물질의 상품화 및 서비스의 상품화에 이은 자본주의 진화과정의 최종 단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체험산업의 전형은 관광산업이다. 오늘날의 체험 욕구는 체험 그 자체를 추구한다기보다 조작적·모사적 체험을 지향한다. 놀이공원·야외극장·휴양지·자연농원 등 의도적으로 설계된 장소에 티켓을 사들고 입장하는 관람객은 곧 한시적 체험을 향유하려는 접속 경제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교양으로서의 문화’는 우리의 감각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단순 오락으로 전락한다. 반면 상품화된 문화를 제공하는 네트워크 통로를 장악한 거대 자본이나 조직은 개인의 문화활동을 지배하게 된다. 저자는 이런 문화의 식민화 경향에 필적하기 위해 대지와의 교감에 근거한 문화생태학적 대응을 제안한다.

 <고려대 김문조 교수 pkim82@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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