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단촐한 사무실의 주인은 요즘 주위에서 ‘억척 아줌마’라는 말을 듣고 있다.
인터넷 혼수선물 사이트 엔러버(http://www.nlover.com)의 진윤자 사장(54)이 그 주인공.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넘어 늦깍이로 인터넷사업에 뛰어든 진 사장은 겸손하면서도 의욕과 성실로 꽉 찬 CEO다.
“저사람 나보다 훨씬 더 사업에 억척스러워요. 내가 못따라갈 정도로 열심이죠.” 진 사장과 같은 사무실을 쓰는 남편 김동승 갑우시스템 사장이 인터뷰중인 아내를 보고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한마디 던진다.
진 사장이 지난해 인터넷에 전격 구현한 것은 서구식 결혼문화인 ‘웨딩 레지스트리(registry)’. 예비 신랑·신부가 필요한 혼수의 목록을 친지나 친구들에게 보내면, 하객들이 축의금 대신에 이것들을 사서 선물한다는 개념이다.
“5년 전 미국 뉴욕에 잠시 머물 때 LA에 사는 친구로부터 딸이 결혼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사정상 갈수가 없어 미안했는데 청첩장에 선물 목록이 들어있더군요. 그게 웨딩 레지스트리였던 거죠. 언젠가 국내에도 이것을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는 한국에 돌아와 남편·조카들과 머리를 맞대고 사업구상에 들어갔고, 갖은 고생끝에 마침내 지난해 9월 ‘엔러버’ 사이트를 오픈했다.
특히 진 사장은 ‘엔러버’를 통해 그동안 간직해온 꿈을 이루게 됐다.
“그동안 자녀들을 대학에 모두 보내고 나면 나 자신의 사업을 하겠다고 꿈꿔왔어요.”
사실 진 사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름대로 사업준비를 해왔다. 법률사무소에 다니며 외국기업의 법인설립 일을 돕던 그는 한국IBM에 재직하던 남편과 결혼한 후 한동안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지난 89년부터 남편이 세운 소프트웨어 판매업체에서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진 사장은 2년 전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뒤 사이트를 본격적으로 개발할 때는 몇달 동안 4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했다. 또 틈나는대로 컴퓨터·무역 실무강좌, 여성사업가 교육과정 등을 들었다. 모 가구사와는 제품공급 협력을 위해 1년을 매달린 끝에 얼마 전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끝에 지난 2월부터 본격 서비스에 들어간 엔러버 사이트에는 현재 500쌍의 예비 신랑·신부들이 가입했다.
“저는 어떤 일을 하던 제대로 해내고 마는 성격이죠. 집에서 살림을 할 때도 그랬어요. 대충대충 하는 것은 싫어해요.” 인터넷 분야에 도전장을 던진 ‘억척 아줌마’가 어떤 결실을 맺을지 관심이 모아지는 대목이다.
<글=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사진=이상학기자 lees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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