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고.’
지난 80년대를 노래한 시인 하덕규의 ‘가시나무’의 한 대목이다. 이 곡은 지난해 가을 조성모에 의해 리메이크돼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2001년 봄. 이번에는 리메이크곡이 아닌 편집음반으로 팬들을 찾아 나선다.
올해 음반계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편집음반’은 이미 출시된 곡들을 재가공해 주제별로 모아 놓는 일종의 옴니버스 음반이다. 이런 편집음반은 보통 30만장 정도 팔리면 대박이다. 지금까지는 음반직배사들이 주로 제작해 왔다.그러나 지난해부터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국내 음반사들이 경쟁적으로 편집음반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탤런트 이미연의 ‘연가’ 도 편집음반이다. 올초 20대를 중심으로 호응을 불러 일으키며 인기몰이에 나선 연가는 이미 130만세트의 판매를 기록했다. 한 세트에 4장이 들어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려 520만장의 CD가 각 가정으로 팔려 나간 셈이다.
연가의 성공비결은 크게 세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좋은 곡들이 많이 수록돼 있다. 조성모에서 윤상·변진섭·부활·이소라·임백천에 이르기까지 80∼90년대 최고 발라드 가수들의 주옥같은 68곡을 모았다.
그 위에 이별의 상처를 가진 ‘비련미’의 주인공 이미연이 음반 이미지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이미연이 겪었을 실연의 아픔을 더듬다 보면 어느새 노래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는 것.
그리고 편집음반이 갖는 최대의 강점, 저렴한 가격이다. CD 4장을 1만6000원에서 1만8000원에 살 수 있어 음악애호가들에게는 값싸게 CD를 소장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미연의 연가는 또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비록 세트당 4장씩 판매되기는 하나 CD 판매량만을 놓고 보면 국내 최고 음반판매량이다. 기존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세운 275만장의 기록은 이미 깨진 셈이다. 한국기네스협회는 ‘4장이 묶여진 편집음반을 한장으로 봐야 할지, 4장으로 계산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다.
연가의 열풍에 이어 이번엔 이영애가 또다른 편집음반을 선보이고 나섰다.
이미연의 연기 라이벌이자 동갑내기인 ‘산소같은 여자’ 이영애가 ‘애수’라는 타이틀로 음반 6장에 102곡을 수록한 편집음반을 발표한 것. 이 음반은 발매 일주일만에 21만세트, 126만장이 팔려 나가 또다른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영애의 ‘애수’는 대만과 일본에 수출될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만에서는 한국 TV드라마 ‘불꽃’이 방영되면서 주인공 이영애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영애가 음반을 냈다는 소문에 대만내 구입문의가 잇따라, 아예 수출까지 고려중이다.
일본에서도 일본대중문화 개방 이후 고조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타고 한국내에서 일고 있는 편집음반 열풍을 알고 싶어 한다. 그 모델로 이영애의 애수를 좋은 예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같이 국내에서 불기 시작한 열풍은 우리 발라드의 해외시장 진출이라는 덤까지 안겨주고 있다.
하지만 편집음반이 음반시장을 공멸케 하는 ‘덫’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전국음반도매상협회는 편집음반의 유통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한국연예제작자협회는 편집음반에 음원을 제공하는 회원사의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음반애호가들이 편집음반에 입맛이 길들여지면 독집음반의 성공 가능성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는 견해다. 만약 아트스트들이 내놓는 음반이 실패를 거듭한다면 편집음반에 담을 음원들도 고갈되고 만다. 결국 우리 음악발전을 가로막는 저해요소가 될 수 있다.
수년전부터 편집음반 제작에 열을 올렸던 국내 팝음반사들이 이같은 부메랑을 맞고 있다. 한때 50만장 이상 팔리던 해외 유명 아트스트들의 음반이 이제는 10만장 판매도 힘에 부친다는 것.
편집음반 제작에 보다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인 셈이다.
<성호철기자 hcs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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