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의 화려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에 길들여진(?) 국내 관객들의 입맛에 도전할 새로운 애니메이션이 어린이날 전국 25개 극장에서 개봉된다.
실루엣(그림자) 애니메이션으로는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이 작품은 다름아닌 프랑스산 ‘프린스 앤 프린세스(원제 Princes et Princesses)’. 프랑스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미셸 오슬로가 무려 10년간 공들여 만든 옴니버스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실루엣 애니메이션은 빛이 투과되는 배경 위에 관절 부위를 움직일 수 있는 인형들을 올려 놓고 조금씩 움직임을 달리하며 한 프레임씩 따로 촬영하는 애니메이션 기법의 하나다.
지난해 프랑스에서만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프린스 앤 프린세스’는 그림자처럼 슬며시 국내에서도 대박을 터뜨릴 조짐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양연화’, ‘빌리 엘리엇’ 등을 제치고 관객이 뽑은 ‘올해 최고의 영화’로 선정된 데 이어 최근 인터넷 웹진 시네버스가 조사한 ‘독자가 가장 보고 싶은 영화’에서 한니발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시사회에서도 애니메이션으로는 드물게 기립박수까지 받았다.
영화배급사인 백두대간(대표 이광모 감독)은 이 영화가 “각기 다른 에피소드에 한결같이 ‘사랑’이란 메시지가 담겨 있는 등 교육적인 내용도 풍부해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백두대간은 이와 관련해 이화초등학교 전교생 720명을 4일 광화문 씨네큐브 극장으로 초청, 영화평론가 심영섭씨와 함께 현장 영화수업을 갖는다.
이밖에 그림자 애니메이션 개봉을 계기로 LG아트센터가 이달 12일까지 일본의 그림자 뮤지컬 ‘빨간 도깨비’를 선보일 예정이며, 가톨릭출판사 생활성서사도 올해 초 출간한 ‘어린이 그림자 성서’에 대한 본격 마케팅에 나설 계획이다.
‘프린스 앤 프린세스’는 외국 평론가들로부터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디즈니 애니메이션쯤은 보름쯤 지난 빵처럼 식상하게 느껴질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백두대간은 이 작품을 ‘라이언 킹’, ‘미녀와 야수’ 등 할리우드 대작에 맞설 ‘프렌치 블록버스터’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사실 이 영화는 형식 면에서 매우 단순하다. 온통 그림자만 등장하기 때문이다. 블록버스터는커녕 ‘화려한 색채’와 ‘뛰어난 기교’를 자랑하는 미국과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비교 대상도 되기 어려울 것이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영화를 직접 보고 난 후라면 생각은 180도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 영화는 해질녁 어스름한 파스텔톤의 배경화면에 시선을 분산시킬 요인이 최소화됐다. 이 때문에 관객들은 갖가지 모양새로 번뜩이는 눈과 마치 사람 같은 입놀림에 자연스레 빠져드는 순간 애니메이션은 ‘밝고 아름다운, 환상적인 것’이라는 선입견에서 해방된다.
관객들은 단순한 그림자만으로도 얼마나 ‘정교하고 아기자기하게 재미난’ 영상이 펼쳐질 수 있는지를 발견하고는 무릎을 치게 된다. 특히 그동안 만화영화계를 지배해온 셀애니메이션이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마당에 그림자 애니메이션이 차분히 선사하는 감동은 색다르다.
마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엉뚱한 상상력과 기발한 아이디어 등 영화 곳곳에 녹아 있는 유머 또한 프랑스식 코믹에 대한 편견을 과감히 깨 버리기에 충분하다.
백두대간은 “유럽적인 미·여백·색감 등이 화려함을 느끼게 하며 주인공이 그림자라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하고 감정이 잘 전달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 작품이 ‘월레스와 그로밋’, ‘치킨 런’ 등 강한 실험성을 내세운 클레이애니메이션과 함께 미국과 일본의 셀애니메이션에 맞서 또 하나의 애니메이션 신드롬을 일으킬지 주목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승철기자 rocki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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