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외국대사에 듣는다>5회-독일:라인핫 부흐헐츠

80년대까지 독일(구 서독)은 유럽국가 중 한국과 가장 친밀한 나라였다.

국가호감도조사에서 언제나 독일은 미국과 함께 1, 2위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우방국가였다.

참혹한 전쟁을 겪고도 강인하게 일어선 경제대국 독일은 당시 한국인이 선망하는 모델국가였으며 분단국가라는 비슷한 공감대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일은 지난 90년 역사적인 통일까지 이룩했다. 통일을 염원하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독일 통일 이후 걸어온 사회통합과 경제발전 전략은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다.

통일 이후 10년. 동서 분단의 골을 메우고 유럽의 심장국가로 발돋움한 독일은 인터넷 세기를 맞아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해외출장중인 후버투스 훤모르 대사를 대신해 라인핫 부흐헐츠(54) 주한 독일 부대사를 만나봤다.

-한국에 부임한 지 3년 반이 넘었는데 그 동안 한국경제의 부침을 체험한 소감을 말해주시죠.

▲부임하기 전부터 한국이 사회·경제적으로 역동적인 나라인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와서 보니 여태까지 근무한 어느 나라보다도 한국에서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더군요. 그 만큼 한국경제의 변화속도가 빠르다는 뜻이며 직업외교관으로써 보람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특히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하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경제 성장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을 너무 한꺼번에 겪는 것 같아 한국민이 안타깝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발전해온 두 나라 간 산업협력관계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여러 산업 분야에서 양국간의 협력관계가 발전했습니다.

화학과 제약, 정보기술, 기계생산, 환경기술 등. 그외에 많은 분야에 걸쳐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산업 분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은행과 보험 등 서비스 분야에서도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는 추세입니다.

-디지털 경제 시대를 맞아 한국과 독일간의 경제협력관계에 어떤 변화를 예상하는지요.

▲한국과 독일은 경제적으로 아주 밀접한 관계입니다. 지난 60∼70년대 한국경제는 독일의 기계, 화학공업에 의존도가 높았습니다. 독일 기술자들이 한국 기업에 값비싼 기계를 수출하는 대신 한국은 독일에 신발과 의류 등 경공업제품을 판매하는 형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의 공업기술도 크게 향상돼 한국산 첨단전자제품이 독일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지난해는 대한무역수지가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한국의 유럽 교역량 중 독일이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독일의 대(對)아시아 교역량 중 한국이 4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외환위기 이후 독일기업들은 한국투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지난 3년간 대한 투자를 4배나 늘렸습니다. 한국의 대독 투자도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은 두 나라 간의 선린관계에 아주 좋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구동독지역에 가장 많이 투자한 아시아 국가입니다.

-인터넷과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정보기술(IT)산업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 분야에서도 두 나라 간의 협력은 어떤지요.

▲두 나라 간에 정보기술 산업협력은 이미 높은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상호투자 증가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교역관계는 양방향으로 상당한 수준에 있습니다.

한국의 주력 수출상품인 휴대폰·반도체·브라운관 등에서 독일 인피니언사의 기여도가 큽니다. 또한 독일 어디에서나 삼성·LG 상표를 붙인 휴대폰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IT분야에서 두 나라 간의 상호의존도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양국간의 경제협력은 선진공업국 간의 대등한 협력관계로 과거보다 더욱 긴밀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특히 IT분야에서 독일은 한국기업의 많은 투자와 기술협력을 필요로 합니다.

-한국의 인터넷 열기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독일 IT산업현황에 대해 소개해준다면.

▲한국의 지인들 중에서는 한국 인터넷 산업이 거품이라는 우려도 많이 하지만 개인적으로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은 그동안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인터넷 분야에서 귀중한 경험과 인적자산을 길러왔습니다. 지금 당장 수익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인터넷 산업이 거품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은 섣부른 판단입니다.

독일의 인터넷 사용인구는 20%로 EU국가 중에서 중위권에 속하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중입니다. 한국은 그 두 배인 40%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같은 비영어권 국가인데도 그만큼 차이가 나는 것은 한국인들의 특성이 정보산업에 잘맞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확실하지 않으면 발을 디디지 않는 독일인과 분명한 차이점을 보이지요.

-유럽연합에 동구권국가가 포함된 이른바 슈퍼EU가 등장할 경우 한국 등 아시아국가의 유럽진출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은데.

▲유럽연합의 확장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국가의 유럽시장 진출이 어려워지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독일정부는 자유세계무역강화를 정책으로 삼아왔기 때문에 모든 EU기구에서 자유무역정책을 대변해왔습니다. 독일은 언제나 시장원리에 기반한 무역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미국다음으로 큰 한국의 제2위 수출시장입니다. 유럽연합이 확장되어도 이런 사정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유럽연합이 확장되면 한국기업은 단일화폐가 통용되는 확장된 경제영역으로 진출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유럽연합의 확장은 한국에게 결코 위협적이지 않습니다. 한국기업들도 이런 사실을 알기 때문에 유럽진출의 교두보로 독일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한국기업들의 대독 투자가 늘어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통일 후 1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동서독 간의 격차는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궁금합니다.

▲독일정부는 통일 이후 동서간 경제·사회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지속했습니다. 그 결과 가시적인 면에서 구동독의 경제는 크게 발전했지만 두 지역 사람들의 마음속에 앙금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는 없지요. 시간이 해결할 따름입니다. 한국인은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적응능력이 뛰어납니다. 독일보다도 빨리 사회·경제적 통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독일과 달리 여전히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입장에서 독일 통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경제적인 협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경제개방과 관련해 독일과 한국이 합작가능한 분야가 있을까요.

▲모든 한독기업 및 정부대표회의에서 독일 측은 한국기업과 협력하여 북한에 진출할 프로젝트에 대한 대화에 지속적인 관심 보여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북한에 대한 투자가능성이 대단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프로젝트는 계획되어 있지 않습니다. 특히 외국기업의 북한내 성공사례가 아직 없어 직접적인 북한 접촉은 유보한 상황입니다.

과거 통일 이후 사회주의 체제인 동독의 낙후한 산업구조를 개선하는데 고생한 경험으로 볼 때 북한이 단기간 내에 높은 생산성을 지닌 산업기지로 변모할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한이 실현되고 개성지역의 공단이 가동되면 한국기업과 함께 북한의 철도·전력·중공업 등 산업인프라 구축사업에 참여할 의사는 있습니다.

-한반도에 화해무드가 고조되면서 통일 이후 남북의 격차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동서독의 통합을 지켜본 외교관으로서 한국인에게 조언할 말이 있으신지요.

▲현재 한국과 북한의 경제력 격차가 동서독보다 심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은 90년 당시의 서독보다 유리한 조건을 한가지 갖고 있습니다.

제조업에서 정보산업으로 경제의 축이 뒤바뀌면서 훨씬 작은 투자로도 지역간 장벽을 줄이는 것이 가능해진 점입니다. 발달된 IT기술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이질적인 두 사회체제를 연결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정보통신 위주의 산업구조 변화는 오히려 한국에 통일에 유리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도로·철도·전력 등 북한의 사회인프라가 새로 구축된다 해도 북한주민들이 디지털경제에 적응하지 못하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가 존재한다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를 겁니다. 지금부터 이런 문제를 고민해야 합니다.

◆약력

47년 독일태생

뉘른베르크, 낭트, 파리대학 사회학 전공

74∼76년 아프리카 코트뒤브아르 아비잔대학교 객원연구원

77년 독일외무부

79년 법사국 이주분야 책임자

80∼83년 주인도네시아대사관 공보관

83∼85년 주유고대사관 경제관

85∼88년 헝가리, 체코 정책 책임자

88∼91년 주프랑스대사관 경제정책 책임자대리

91∼93년 독일, 외무부 유럽통일 및 방위정책 책임자대리

94∼97년 주중앙아프리카 공화국대사

97.10∼현재 주한 독일대사관 부대사, 경제정책 책임자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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