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 사회에 「꼴찌에게 갈채를」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당시 별볼일 없는 「꼴찌 집단」이었던 기자에게 이 말은 엄청난 힘이 됐다. 영화가 만들어졌을 만큼 「꼴찌예찬론」은 대단했다.
이동전화사업자 중 꼴찌는 LG텔레콤. 신세기통신이 SK텔레콤으로, 한솔엠닷컴이 한국통신프리텔로 인수되면서 LG텔레콤은 가입자면에서 꼴찌가 됐다.
국내 기업의 간판격인 LG그룹으로서는 LG텔레콤이 꼴찌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400만명을 육박하는 가입자를 보유한 LG텔레콤은 전세계 이동전화사업자 중에서 꽤나 큰 규모다. 몽골의 1위 이동전화사업자인 모비콤 가입자는 2만여명에 불과하다. 여기에 비하면 LG텔레콤은 거대 통신사업자다. 우리나라에서는 꼴찌지만.
꼴찌는 아프다. 100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1, 2위 업체가 경쟁업체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규모의 경제도 불가능하다. 가입자들은 꼴찌업체 서비스에는 무언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며 다른 서비스 사업자를 선호한다. 이른바 가입자 쏠림현상이다. 이 때문에 매일 시름시름 아프기만 하다.
LG텔레콤에는 훌륭한 임원들이 많다. 대부분의 임원들은 외국 박사 출신이다. 이들은 꼴찌를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어울림이 강한 꼴찌 문화를 모른다. 임원 입장에서 생전 처음 겪는 꼴찌라는 위치는 생소하기만 하다. 일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우수한 인재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신경질이 난다.
다른 경쟁사업자 임원들도 매우 우수한 인재들이다. 그러나 경쟁업체에는 LG텔레콤이 갖지 못한 다양성이 있다. 일등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꼴찌도, 중간도 있다. 「꼴찌와 중간」의 다양한 경험을 가진 임원이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 꼴찌를 하더라도 이들은 아프지 않다. 꼴찌에게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다독거릴 수 있는 인정이 있다. 이 때문에 꼴찌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위로가 된다. 벤처기업에도 이러한 다양한 꼴찌와 중간의 문화들이 뒤섞여 있다. 이들은 목표나 위기가 있을 때 차돌처럼 강해진다. 바로 벤처가 성공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임직원들은 일등이지만 경쟁에서는 꼴찌인 LG텔레콤. 이제 꼴찌가 갖고 있는 여유와 도전정신을 배울 때도 됐다. 일등은 한명이지만 중간과 꼴찌에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분포돼 있다. 꼴찌와 중간을 경험한 사람은 꼴찌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안다. LG텔레콤에는 이제 꼴찌의 지혜가 필요하다.
<정보통신부·김상룡기자 sr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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