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당당한 산업행정을 기대한다

로마인들은 전장에서 패한 장군을 벌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로마 의 장군들은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고 항상 소신껏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들은 승패를 떠나 국가와 자신의 명예를 위해 전장에 나갔다. 역사상 가장 넓은 지역을 지배했던 로마를 소재로 「로마인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가 나열한 수많은 로마인에 대한 칭찬 가운데 한 부분이다.

신약성경에는 2000년전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예수와 도적 바라바 가운데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 것을 요구하는 민중의 요구에 빌라도는 바라바를 매달고자 했던 자신의 생각을 접고 물에 손을 씻으며 책임을 민중에 전가한다.

한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서 상이한 이들 두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이들 구절을 보면서 특별한 감동이나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한해가 주는 아쉬움 때문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으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상당한 변화를 기대했다. 그 변화는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 우리 삶을 보다 긍정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랐다.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신문이나 잡지속의 수많은 글 속에 녹아 있던 이 같은 마음들은 매년 이맘때면 느껴야 했던 회한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한해 동안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어느 때보다 많은 사건과 사고가 터져 나왔다. 끊임없는 정쟁으로 불안정한 정치판과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경제상황은 코스닥 몰락과 함께 국가의 새로운 동력인 벤처기업을 동면으로 몰아넣었다. 정부의 감사기관까지 연루된 경제범죄가 잇따랐으며 원칙을 잃어버린 행정은 혼돈과 불신만 쌓아놓았다.

신경제의 핵으로 부각되던 IT산업은 아직 경제 회생의 희망으로 남아 있으나 그 역시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개 속에 갇혀 있다. IT산업이 질곡의 한해를 보내야 했던 것은 산업 자체가 가진 결점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환경변화와 훼손된 지 오랜 정치 및 행정, 경제의 투명성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올해 IT분야에서 여러가지 사건과 사고 가운데 가장 이슈가 됐던 것은 역시 최근 있었던 IMT2000 사업자 선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사업은 사업 자체가 가진 가능성도 가능성이지만 사업자 선정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이 현재 우리가 가진 문제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IMT2000 사업자 선정 과정을 보면서 가진 가장 큰 의문점은 선정주체가 무엇을 두려워했는가 하는 점이다. 빌라도가 손을 씻으며 민중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처럼 선정 과정에 대한 책임을 선정위원회로 돌려야 할 만큼 그들을 압박한 것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이전 PCS사업자 선정에서 불거졌던 문제를 예로 본다면 그것은 산업적인 안배를 무색케 할 만한 정치적인 외압일 수도 있으며 금전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가 무엇이었든간에 이를 둘러싸고 앙금이 남았다는 것은 선정 과정 자체가 매끄럽게 모두를 이해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정주체가 로마의 장군처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소신껏 결정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다면 선정 과정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부질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규모 이권사업과 관련된 정부의 결정들이 항상 잡음을 남기는 것이 성숙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라는 점에서 자책감을 지울 수 없다.

IMT2000 사업자 선정이 적절한 예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행정부, 특히 산업을 관장하는 부처의 권위가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간섭이 배제된 투명한 산업행정은 건전한 경제활동으로 나타날 것이고 그것은 침체된 경제를 바로 세울 수 있는 하나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보다 많은 공감을 얻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