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거창한 법과 제도 이전에

정국환(행정자치부 행정정보화계획관)

얼마 전 한 석간신문의 독자 투고란에 게재된 어느 회사원의 이유 있는 항변이 마음에 걸린다. 예비군 훈련 대상자인 그는 해외 출장을 다녀온 뒤 예비군동대에 귀국신고를 늦게 했다는 이유로 20만원의 벌금을 냈다고 한다. 그의 불평의 요지는 이렇다.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하면서 입국사실을 동사무소에 전산망으로 통보하는 간단한 시스템으로 해결이 가능한데, 입국 때마다 관청에 나가 직접 신고해야 한다면 국민들 세금은 도대체 어디에 쓰는 것인가.』

전자정부는 정보기술(IT)과 업무절차의 혁신을 융합해 행정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대국민 서비스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불평 앞에 귀에 익은 전자정부의 목적이 공허해져 버린다. 전자정부 정책이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업무개선의 효과를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와 같은 불평의 소지를 점차 줄여나가야 한다.

현재 추진중인 행정자치부의 전자정부 정책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군·구 행정종합 정보화 사업도 여기에 중점을 두어 지난 9월까지 1단계 사업을 끝낸 후 정상운영중이고 지금은 2단계 사업을 위한 시범사업이 진행중이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주민들은 자동차등록증·토지대장 등의 제 증명을 관할 시·군·구가 아닌 전국 어디서든지 발급받을 수 있게 된다. 또 내년부터는 주민등록등초본·호적등본·호적초본도 가능해진다. 기관간 정보 공동활용에 의해 민원신청시 제출해야 했던 첨부서류도 많이 폐지됐다.

IT를 활용해 주민·자동차·부동산·세금·기업 등의 민원서비스를 국민 위주로 혁신하기 위한 사업이 현재 행정자치부·정보통신부·기획예산처 등 관련부처와 공동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 사업의 목적도 물론 원스톱·논스톱 서비스를 위한 단일민원창구를 만드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국민이 관청을 방문하지 않고도 민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있다. 정보화의 효과를 국민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전자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 정보화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만들고 여기에 개별 기관별로 기관장의 강력한 의지가 결합돼야 한다. 행정부는 물론이고 입법부·사법부·선거관리위원회·헌법재판소 등 국가기관의 자발적인 의지가 전제돼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국가기관을 하나로 묶어서 일괄 추진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할 경우 적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우선 일괄 추진할 조직이 있어야 하고, 그 조직은 모든 국가기관을 포괄하는 전자정부를 추진해야 되기 때문에 상당한 법적 근거가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논란도 우려되거니와 법 제정 후 운영과정에서의 다툼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무슨 일이 되지 않을 때 법과 제도를 탓하는 경향이 있다. 전자정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사무처리·민원제도의 전자화와 같은 새로운 방식이 도입될 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인 규율은 필요하다. 행정자치부가 최근 정보통신부·기획예산처 등 관련부처와 합의해 정부안으로 확정한 「전자정부 구현을 위한 법률안」이 바로 그것이다. 행정체계나 법령이 아직도 종이문서 위주로 돼 있어 민원신청과 대민서비스를 전자문서로 행할 수 없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소한의 필요 사항을 규정한 것이다.

예컨대 종이문서로만 민원을 제출하게 한 2000여개의 법률 조문에도 불구하고 전자적 신청을 인정하고 전자적으로 고지하거나 민원 수수료의 전자적 수납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서의 효력을 보증하는 행정기관의 관인을 대신할 전자관인과 그 인증에 대한 규정도 있다.

이 법이 규정하고 있는 자료 및 문서의 전자적 교환, 전자적 업무수행, 전자회의 운영 등의 규정을 준용하면 행정부는 물론 국회·법원도 고유업무를 전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영상회의시스템을 이용한 국정감사의 원격증인신문·원격재판 등이 가능해진다. 물론 법적 효력에 대한 다툼이 예상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좀더 치밀한 규정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결국 전자정부를 성공시키는 요인은 새로운 거창한 법과 제도가 아니라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정보화와 이를 통한 국민의 지지다. 이를 위해서는 앞서 예를 든 회사원의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하고 그러한 문제의 소지를 줄이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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