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DEX KOREA 2000]반도체산업 미래가 한눈에

『반도체가 없었다면 우리나라 경제는 어찌 됐을까.』

IMF체제에서 간신히 빠져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은 이런 물음을 던지며 아찔해한다. 그만큼 반도체산업은 IMF체제에서 조기 졸업하는 데 일등 공신이다.

D램 반도체의 수출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올들어 지속적인 성장을 누렸다. 가격까지 오르면서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의 매출과 순익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두 회사뿐만 아니라 아남, KEC 등도 수출 호조를 보였으며 장비업체들까지 가세해 올해 반도체 수출은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렸다.

국내 총 수출의 14%를 넘게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이 살아나면서 잔뜩 움추렸던 경제도 활력을 되찾았다.

반도체 수출 호조는 벤처붐과 아울러 2년여만에 IMF체제를 졸업하는 지렛대 구실을 한 셈이다.

이래서 반도체가 없었다면 조기 졸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런데 하반기들어, 정확히 9월 들어 상황이 돌변했다. 반도체 가격의 상승세가 한풀 꺾이더니 10월 말 현재 64M의 개당가격이 5달러 안팎으로 곤두박질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전자도 높은 실적에도 불구, 연중 최저치의 주가를 기록했다.

반도체산업 위기론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증권사들은 PC시장 성장의 둔화를 이유로 반도체 공급 과잉을 관측했다.

여기에 인텔, 마이크론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이 기대에 못미치게 나왔고 일부 D램 업체들의 재고 물량 처분에 따른 현물시장 가격이 폭락했다.

전세계적으로 반도체 회사의 주가는 땅에 떨어졌으며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내 주식 투자자들도 IMF 탈출의 일등 공신인 반도체산업을 마치 역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반도체산업은 과연 위기인가. 아니다. 미국 PC시장의 둔화에도 불구, D램 수요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주가 하락으로 손해본 것도 원통한데 우리 때문에 주가가 떨어졌다는 말에는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삼성·현대전자 직원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반도체가격의 하락과 주가 하락은 국내 업체의 시장 상황과 무관하다. 그렇지만 국내 반도체산업의 미래에 대한 걱정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경기변동이 심한 D램에 편중된 산업구조」 「장비·부품·소재의 외산 의존도 심화」 등의 해묵은 문제점들이 국내 반도체산업을 따라다닌다.

걱정스러운 것은 일본·대만·중국 등 주변국들의 움직임이다. 이들 국가의 업체와 정부는 최근 반도체 산업을 대대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몇 안되는 업체가 고군분투하는 국내 반도체산업과 사뭇 대조를 이룬다.

일본 D램 업체들은 한국 D램 업체에 완패한 이후 플래시메모리 등 사업 다각화를 전개하고 NEC­히타치 합작사(엘피디메모리)를 축으로 차세대 D램 시장 선점에 나섰다. 또 업체간 차세대 기술 개발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등 한국업체를 겨냥해 칼을 갈고 있다.

대만 업체들은 수탁생산(파운드리) 산업과 폭넓은 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한국 업체 못지 않는 기술력을 쌓아가고 있다.

중국 역시 2000년대 하반기를 목표로 반도체 입국을 선언하고 자국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내 반도체산업도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이에 국내 업체들은 D램 사업구조를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고도화하는 한편 그동안 등한시했던 비메모리 사업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대대적인 차세대 메모리생산라인 신설과 아울러 10년만에 비메모리 전용 생산라인을 착공했다.

현대전자 역시 플래시메모리, S램 등 D램 밖의 메모리 제품과 아울러 파운드리사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워크아웃까지 경험했던 아남반도체는 파운드리전문업체로 재도약을 다짐했으며 동부전자도 내년부터 비메모리시장에 본격 뛰어들 예정이다.

장비 업체들의 국산화 움직임도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국내 장비업체들은 그동안 앞공정 장비시장 진출에는 엄두를 내지 못했으나 최근의 벤처붐을 타고 자본력을 갖추면서 앞공정 장비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장비업체들은 특히 다가오는 300㎜웨이퍼 시대를 국산 장비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또 국내에 취약한 부품·소재 분야에서도 최근 대기업과 벤처기업들이 가세해 기술력을 쌓아가고 있어 1, 2년 안으로 결실을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그럼에도 불구, 국내 반도체산업의 미래를 밝게 보는 시각은 그다지 많지 않다. D램을 제외하곤 국내 반도체산업이 세계적으로 우위에 선 분야가 없으며 선진업체에 진입하는 문턱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세계 D램 시장 1, 2위인 삼성전자와 현대전자가 공동 보조를 맞추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국내 반도체산업이 이만큼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줬던 정책 당국도 팔짱만 끼고 있다.

섣불리 지원했다가 세계무역기구(WTO)체제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대적으로 지원하는 주변국과 대조적이다.

일반 국민의 반도체산업에 대한 애정도 식고 있다.

예전에는 반도체를 「산업의 쌀」이라 부르며 새로운 제품 개발에 환호성을 질렀으나 이제 국내 업체가 어렵게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해도 반응은 시큰둥하다.

반도체업체에 대한 지원 얘기가 나오면 『돈을 많이 버는 회사들에 뭐하러 지원하나』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국민뿐만 아니라 정책 당국에서도 그러하다.

우리가 험한 길을 넘어 반도체 강국이 된 것은 사실이나 앞으로 걸어야 할 길도 천리길이다.

지금 잘나가는 D램 반도체산업 대량 생산의 특성상 일본이 한국에 밀렸듯이 언제든지 후발주자에 넘겨줄 수 있다.

진짜 위기는 반도체업체에 인재가 몰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즘 대학에서는 반도체를 연구하겠다는 학생들이 줄어들어 교수들마다 울상이다. 유행병처럼 인터넷 벤처로만 향한다.

엔지니어들 사이에 반도체 연구가 「3D업종」쯤으로 여겨진 지 오래다.

반도체업체 경영자들은 올해의 실적 호조에도 불구하고 몇년 뒤 불투명한 미래를 보며 걱정에 사로잡혀 있다.

「다시 뛰자」 반도체 업계에서는 「제2의 반도체 신화」를 만들자는 구호가 나오고 있다. 10년 뒤를 내다보는 장기 비전을 세우고 이를 착실히 준비하자는 주장이다.

25일부터 사흘동안 학여울 서울무역전시장에서는 반도체산업협회 주최로 「한국반도체산업대전(SEDEX코리아 2000)」이라는 행사가 열린다. 산업자원부와 과학기술부가 후원하고 삼성전자·아남반도체·현대전자가 지원한다.

이 곳에 가면 그동안 반도체산업계가 소리높여 외쳤던 장비·부품 국산화가 얼마만큼 진전됐는지 살펴볼 수 있다.

또 주의깊은 사람은 재도약하려는 국내 반도체산업의 미래가 얼마만큼 밝은지 점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윤우 한국반도체산업협회장은 『국산 신제품을 전시하는 이번 행사는 국산 제품의 사용을 촉진하고 수입 대체 효과를 확대하는 국산화 전시회』라면서 『널리 알려진 기존 업체보다는 최근에 창업한 신규 벤처기업 등 200여 업체가 참여한 것에서 보듯이 국산화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업계는 이번 전시회가 단순한 업체의 잔치를 넘어 국산화에 땀흘리는 반체기업에 대한 국민의 각별한 관심을 쏟는 장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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