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부품.소재산업 르네상스를 위하여>12회-특별기고;「협력의 틀」다시 짜라

◆삼성경제연구소 김근동 수석연구원◆

디지털 시대를 맞아 세계의 전자산업계가 급류를 타고 있다. 어떠한 정보라도 온라인을 통해 빠른 속도로 세계 곳곳에 신속하게 전파되는 글로벌화가 급진전되면서 과거의 아날로그 시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개념의 전자제품이나 부품군이 속속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 사용의 활성화로 전자제품의 생산방법이나 판매 및 물류 등도 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대적인 변화 때문에 지금까지 완성품 전자메이커와 부품업체간에 지속돼온 관행 및 질서가 파괴되거나 변화될 것을 요구받게 됐다.

최근에 국내 전자부품업계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주요 트렌드나 변화 사항을 짚어본다.

첫째 전자메이커 부품 모듈화가 진전되고 있다. 극소형 IC 및 반도체의 탄생이나 나노기술의 진전 등으로 전자 제품에 사용되는 부품이 소형화되면서 완제품에 부품을 원천적으로 탑재하는 모듈화가 급진전되고 있다. 특히 핵심부품의 탑재를 전제로 한 상품 설계가 유행처럼 번져 나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전자부품업체의 설 땅이 자꾸만 좁아질 수밖에 없다.

둘째 전자메이커로부터의 원가절감 및 리드타임단축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전자메이커들은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들의 변화는 물론 부품업체들에도 새로운 혁신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전자메이커와 동일한 소프트인 전사적자원관리(ERP)나 공급망관리(SCM)의 도입을 통해 원가절감은 물론 필요한 원자재나 부품의 적기 공급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셋째 부품구매 형태가 급속히 변화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복수의 전자메이커들이 불특정 다수의 부품업체들을 상대로 직접 거래하는 방식으로 구매패턴이 자꾸만 변화되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부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e마켓플레이스(e-MarketPlace)의 개설이 검토되기 시작했다. 규격표준화가 진전되면서 전자메이커들은 적기에 필요한 양만큼의 부품을 복수의 부품업체로부터 조달받아 사용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넷째 국제간의 새로운 분업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국제간의 분업은 산업별·제품별로 진행되는 것이 주였다. 미국에서 일본으로, 다시 한국이나 중국 등으로 이동하는 제품별 분업 형태가 이제 새로운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제품이나 부품의 공정별 분업 가속화를 들 수 있다. 연구개발(R&D) 분야의 경우 과거에는 기술력의 확보나 특허 등의 독점을 이유로 개별기업이 혼자 연구개발 업무를 모두 담당하는 형태로 접근했다. 수많은 부품기술을 독자적으로 확보하려다 보니 인력이나 투자비가 너무 많이 들었다. 그래서 핵심역량에 맞는 기술만 자사가 담당하고, 나머지는 다른 기업에 위탁해 개발하도록 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빠른 속도로 변하는 기술의 세계에서도 이제는 기업간의 협력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전자산업의 선진국인 일본에서도 엄청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동통신단말기를 비롯해 하이테크 정보통신 분야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이에 따라 컴퓨터 및 휴대전화 부품의 심각한 재고부족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일본의 전자메이커는 지금의 부품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해외조달을 크게 확대하고 있다. 국내 시설의 확대보다는 투자비 및 인건비가 일본의 3분의 1∼10분의 1에 불과한 중국·말레이시아·필리핀 등으로 부품 조달처를 전환하고 있다. 또한 전자부품의 설계나 상품기획 등과 같은 핵심분야까지도 해외에 이전하겠다는 전자메이커가 늘어나고 있다.

이와 같이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의 전자부품업계가 어떻게 해야 생존할 수 있을까.

우선 전자메이커와 부품업체간의 협력관계가 변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 새로운 가치사슬의 형성이라는 목표하에 협력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

연구개발의 경우만 보아도 정보유출과 기술력 확보라는 측면만 고집하면서 모든 것을 내부에 끌어앉고 있다. 이렇게 되면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비용증가는 전자메이커의 이탈 현상을 야기한다. 따라서 비교우위가 있는 기술개발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다른 회사에 맡기는 공정분업에 나서야 한다. 또한 인터넷 시대 전자메이커의 새로운 시스템 도입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e마켓플레이스에도 참여해야 한다. 이럴 경우 전자메이커는 불특정 다수로부터의 부품구매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부품 부족시 이에 대비하거나 핵심부품의 선확보를 위해 핵심 부품업체와의 사전협력을 모색하게 된다는 것을 활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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