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TV 시험방송이 시작되면서 디지털TV 및 세트톱박스 업체들에 대한 수혜론이 증권가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방송 시장은 당분간 답보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여 관련종목에 대한 수혜론은 시기상조라는 것이 관련업계의 지적이다.
지난달 31일 SBS가 처음으로 디지털TV 시험방송에 들어간 데 이어 KBS·MBC가 지난 3일부터 시험방송에 들어갔다. 지난주부터 증권가에서는 디지털방송 관련종목에 관심이 쏠리면서 「디지털방송 수혜리스트」가 속속 발표되기도 했다.
◇미온적인 방송사의 입장=증시의 뜨거운 반응과는 달리 업계에서는 디지털방송 시장이 예상만큼 급속도로 팽창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방송가 관계자는 2조원이 넘는 비용 때문에 디지털방송 사업을 서두르기 힘들어 방송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정부방침에 따라 미온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지상파 디지털방송 수신방식이 미국식(ATSC)으로 결정된 것도 방송사 입장에서는 부담이라는 지적이다. ATSC방식은 이동통신기기에서 수신이 어렵다는 등의 문제로 한국방송기술인협회·시청자연대회의 등이 방송수신방식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디지털TV 보급에 시간이 걸릴 듯=디지털TV 보급률이 단기간에 높아질 것이라는 견해에도 반론이 만만치 않다. 일반TV 보유자들은 대당 100만원이 넘는 세트톱박스를 구입하더라도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의 화면으로밖에 볼 수 없다. 세트톱박스를 통해서 가능한 것은 데이터 방송뿐이다. 그러나 방송 3사가 송출하는 내용은 주로 고선명 화면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 데이터 방송은 부수적이다.
현재로서는 디지털방송을 시청하려면 디지털TV를 구입해야 한다. 보급형으로 나온 제품도 350만원대로 여전히 고가품에 속한다. 게다가 본격적으로 고화질을 감상하려면 1000만원대에 이르는 50인치 제품을 구입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또 업계 및 증권가 일각에서는 고화질을 위해 거액을 투자할 소비자가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품고 있다. 이에 따라 디지털TV 보급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
◇세트톱박스 수혜론도 의문=디지털TV 보급의 중간단계로 꼽히는 세트톱박스 업체가 수혜를 볼 것이라는 견해도 신뢰하기 힘들다. 세트톱박스 생산업체로 알려진 거래소와 코스닥 종목 중 디지털TV 관련 종목은 삼성전기·LG전자뿐이다. 휴맥스·청람디지털 등 세트톱박스업체는 위성방송 수신용 제품 생산업체다. 디지털 위성방송은 내년 6월 시험방송 실시 예정이나 최근 컨소시엄이 해체되는 등 잡음이 들끓고 있어 디지털 위성방송 시작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 수년 뒤 삼성전자 등 가전 3사가 일체형 디지털TV 보급에 열을 올릴 경우 디지털방송 및 위성방송용 세트톱박스 시장은 틈새시장을 형성하기도 전에 위축될 수 있다.
◇수혜종목 출현에도 시간이 걸릴 듯=동원증권 한승호 연구원은 『디지털TV 시험방송 시작이 관련종목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관련종목에 대한 수혜가 즉각 나타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방송으로 인한 신규 시장 확산은 점진적으로 이뤄질 뿐이며 수혜종목 출현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김규태기자 star@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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