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우리는 전자산업과 관련해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됐다. 그것은 바로 올해 상반기동안 전자제품 수출이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산자부 발표에 따르면 올들어 6월말까지 모두 321억달러어치에 이르는 전자제품을 세계 각국에 수출하고 218억달러어치를 수입해 100억달러 이상의 흑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90억달러에 비해 14.4% 증가한 것이다.
올들어 각 산업의 수출증가율이 전반적으로 둔화세를 보이고 무역수지도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이같은 소식은 더없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용면에서도 그렇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전제품이 주력제품으로 수출을 주도했지만 지금은 그 양상이 크게 달라졌다. 반도체가 119억달러어치 수출된 것을 비롯해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휴대폰, 브라운관 모니터, 개인용PC 등 첨단제품들이 해외시장에서 성가를 높이고 있다.
외형과 내용면에서 보면 우리 전자산업의 수출은 성공의 길을 걷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실속있는 무역으로 6개월동안 100억달러가 넘는 흑자를 기록했다고 만족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 TFT LCD, 휴대폰, 브라운관 모니터, 개인용PC 등 첨단제품의 수출이 크게 늘어난다고 자만에 빠져서도 곤란하다.
문제는 대일무역 역조현상이다. 일본으로 수출하는 것보다 수입하는 것이 훨씬 많다. 물론 대일무역 역조문제는 결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일본과 국교정상화 이후 30년이 넘도록 대두돼 온 문제다.
사실 올해 우리나라 많은 컴퓨터와 벤처기업 제품들이 까다롭기 유명한 일본시장을 개척, 수출을 늘려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본의 자본재 부품수입이 수출보다 훨씬 큰 실정이다. 실제로 전자산업과 관련해 한달 평균 10억달러 이상의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지난 98년 수입선 다변화 품목에서 해제된 제품의 경우 수입이 무시 못할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국내에 수입이 허용된 캠코더의 97% 정도가 일산제품이며 밥솥은 전량 일본산이다.
이같은 추세라면 산술적으로는 연간 100억달러가 넘는 대일무역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실로 엄청난 규모다.
지난해 이맘때쯤 일본의 평론가 오마에 겐이치가 「사피오」라는 잡지에 우리나라 대일무역에 관한 비판의 글을 게재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한국은 일본에서 공작기계의 부품을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고 이를 미국이나 유럽에 수출한다. 한국 대기업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명품의 핵심부품은 거의 다 일제다. 그러나보니 부가가치는 낮을 수밖에 없고 수출이 늘수록 대일무역적자도 같이 늘어난다. 한국이 이런 상황을 오랫동안 방치해 온 것은 산업정책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장기비전을 제시할 만한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 눈앞의 무역수지에나 급급해 왔다.」
우리의 대일무역적자문제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현재와 같은 수출입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선 우리 전자산업의 건실함을 담보할 수 없다. 물론 지금 당장 대일 수입품목의 국산대체나 대일 의존을 누그러뜨리는 산업구조로 쉽게 이행할 수도 없는 한계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일본이 각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나라를 따돌리고 세계 전자산업 대국으로 명실상부한 주도권을 잡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선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본의 의존도가 높은 자본재와 부품 산업육성을 강력하게 추진해 이들 제품의 수입을 억제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국내 기술에 의해 개발된 국산제품들이 국내 기업들에 의해 활용될 수 있도록 각종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특히 정부가 지난달부터 대일무역적자 해소차원에서 일본을 수출보험 특별지원국으로 지정해 수출보험 한도를 확대하고 부품 소재와 벤처제품을 중심으로 수출보험료를 20%씩 할인해주기로 한 것도 차질없이 추진돼야 한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적 지원도 기업들이 자신의 기술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대일무역적자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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