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사이버 은어

박광선 국장석부장

「방가, 아이 짱나, 잼써따, 먀내, 걍…」

「안녕하세요」라는 실생활의 인사말처럼 인터넷 채팅방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지만 「반갑다, 아이 짜증나, 재미있었다, 미안해, 그냥」이라고 풀어주기 전에는 일반인은 물론이고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도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것만 같은 이른바 사이버 은어들이다.

셤(시험)이나 저나(전화)는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으나 리하이(채팅방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면서 하는 인사말) 또는 잠수(대화방에서 남몰래 주고 받는 말)가 무슨 의미인지 아는 일반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국적불명의 사이버 은어가 난무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맞춤법을 몰라 이처럼 전화를 저나로, 시험을 셤이라고 쓰는 것은 아니다. 신속성이라는 인터넷의 속성을 살리고, 편한 대로 컴퓨터 자판을 치다보니 이런 표현이 자주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사이버 은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다보니 한글학자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칫하면 사이버 은어가 우리 고유의 언어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이버 은어를 풀이해 주는 웹사이트까지 개설됐다고 하니 이들의 걱정이 기우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일이 국내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you」와 「are」의 소리를 따 u와 r로 쓰거나 「because(왜냐하면)」를 b/cuz로 쓰는 것이 고전이 됐을 정도로 영어권 네트즌의 사이버 은어 열풍도 뜨겁다.

또 AYT(Are you there:거기 있어요), B/F(boyfriend:남자친구), G/F(girlfriend:여자친구), DTS(Don’t think so: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가 기본적인 채팅약어 반열에 들어섰을 뿐만 아니라 POS(Parent over shoulder:부모님이 뒤에 계시다), SOFT(sence of humer failure:썰렁하다), IMHO(in my humble opinion:제 소견으로는) 등을 모르면 채팅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이처럼 사이버 은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속도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여러명이 대화하므로 속도가 느리면 아예 낄 엄두도 내지 말아야 한다. 이들이 가급적 말을 줄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따지고보면 장황하게 설명할 시간이나 공간이 주어지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례로 실생활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과 인사할 때 「안녕하세요」 또는 「반갑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사이버 세상에서는 「방가」 또는 「꾸벅(인사하는 모습)」이라고 치면 끝난다. 또 「어린 동생이 잘 수 있도록 이불을 펴주고 올게」라는 긴 내용의 말도 BRB(be right back:곧 돌아올게)라는 세 글자면 충분하다. 상대방의 신상을 물어볼 때는 나이(age) 성(sex) 위치(location)의 머릿글자를 따 A/S/L, 답변도 15/M/S(15세인 남자로 서울에 산다)로 간단하다.

이처럼 사이버 은어는 의미가 농축되어 있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다. 이러한 사이버 은어는 주로 10대가 개발하고 사용하지만 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채팅 대열에 합류하는 성인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휴대폰의 특수문자로 대화하는 사이버 상형문자족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삐삐에 「1010235(열렬히 사모해)」 「1004(천사)」라는 숫자를 입력하거나 컴퓨터 자판상의 특수문자를 이용해 ‘·―·’(웃는 표정)을 보내는 것은 이미 오래된 얘기다. 최근에는 「Vm∼(여우)」 「(·(00)·)(돼지)」 「〉(*/*/*) (사탕)」 「〓:·B(서세원)」은 물론이고 머리를 긁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_―a(글쎄)」, 굼벵이를 나타내는 「(:)))))))」, 거부감을 나타내는 「%%%%%%%(닭살 돋는다)」 등 사이버 상형문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21세기 패러다임의 핵심은 디지털과 지식이며, 인터넷이 주축을 이루는 디지털이 지구촌의 법칙을 뒤바꾸고 있다는 작금의 현실을 감안하면 사이버 은어 및 사이버 상형문자가 생겨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본다.

하지만 생각없이 마구 사용하는 사이버 언어가 우리의 한글체계를 파괴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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