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제에 엔진을 달자>3회-인식전환이 시급하다

원철린 산업전자부장 crwon@etnews.co.kr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드리워진 법.」 벤처기업의 지정이 취소된 업체수가 늘어나고 있다. 98년 말까지 3개에 불과했으나 지난 한해 동안 72개로 급증했다. 올들어서도 1·4분기에만 11개 업체가 취소됐다.

탈락업체가 생겨나면서 벤처기업을 둘러싸고 있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다.

벤처기업의 실상이 한꺼풀씩 벗겨지면서 일부 벤처기업들이 「졸부의식을 갖고 재테크에 나서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시각도 터져나오고 있다. 실제로 코스닥에 진출한 벤처기업 중에 본업을 제쳐두고 주식투자에 열중하는 업체들이 많다.

새롬기술이 249억원을 출자한 네이버컴을 비롯, 7개 기업에 555억원을, 골드뱅크도 무려 29개 기업에 497억원을, 다음커뮤니케이션이 10개 기업에 468억원을 각각 출자했다. 코스닥기업들의 타법인 출자금액을 보면 올들어 6월 중순 현재 475건 1조2016억원에 달하고 있다. 일부 코스닥기업들이 「시너지효과」를 거둔다는 명목하에 재벌형태를 답습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식투자로 떼돈을 번 벤처기업도 있다. D사는 연초에 한통하이텔 주식을 팔아 불과 20일 남짓한 기간에 144억원의 수익을 올렸으며, K사는 금융전산업무를 아웃소싱한다는 명목으로 업체의 주식을 인수했다가 불과 열흘 만에 주식을 처분하기도 했다.

재테크와 함께 벤처기업에 만연해 있는 「모럴해저드 현상」도 심각한 수준이다. C사의 대표이사는 외부에서 조달한 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하면서 여성스캔들까지 일으켰다. D정보는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 고발됐고, E사는 사장과 직원간에 초과근무수당을 놓고 주먹을 휘둘러 형사고발을 당했다. K사의 경우 뒤늦게 가세한 직원들이 임원들에게 우리사주를 요구하면서 불화를 겪기도 했다. 다행히 임원들이 자신의 몫을 떼어내 내놓음으로써 불화를 막았지만 창업초기에 가졌던 마음자세들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

벤처거품론이 확산되면서 드러난 이런 실상에도 불구하고 벤처창업은 활발하다. 중소기업청이 지정한 벤처기업수는 지난 4월 월간 500개를 넘어서면서 5월에 총 563개로 월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벤처기업수는 5월말 현재 7110개로 지난해말 4934개에 비해 44.1%나 증가했다. 여전히 벤처는 우리 경제의 활력소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벤처기업의 창업붐을 다시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그동안 벤처기업에 대해 갖고 있던 잘못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하나는 벤처기업이 모두 성공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벤처기업의 열개 중 아홉은 망하고 한개밖에 성공하지 못한다』고 떠들면서도 아홉개의 실패를 문제라고 생각해 왔다.

늦깎이로 벤처기업을 창업한 클릭TV 정용빈 사장은 『벤처기업의 실패도 자산』이라면서 『벤처기업의 말그대로 가능성만 있으면 도전할 수 있기 때문에 벤처기업의 실패를 실패로 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이 꼭 들어맞는 데가 벤처기업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투자자들의 인식이 전환돼야 한다. 벤처기업의 컨설팅을 해주고 있는 벤처인에이블의 김웅겸 사장은 『게놈프로젝트를 발표한 미국이 부럽다』면서 『우리의 경우 게놈프로젝트와 같은 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우리의 투자형태를 부끄러워한다. 미국의 투자자들은 수천만달러를 벤처기업에 투자하면서 십수년간을 기다려 주기도 한다. 벤처기업의 말그대로 모험정신에 투자하고 결과를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정반대다. 모험정신을 높이 사기보다는 당장 눈앞의 이익에 얽매여 투기식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제 갓 출발한 벤처기업에 수익모델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인터넷업체의 L모 사장은 『1∼2년 만에 수익모델을 창출할 수만 있다면 무엇 때문에 고민하면서 경영을 해나가겠느냐』면서 『아이디어가 결실을 맺기 위해선 오랫동안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벤처기업을 단순한 투기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견인차로 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하는 대상으로 바라보아야 할 때다.

다음으로 정부의 자세도 바뀌어야 한다. 한때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는 서울테헤란밸리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 물밑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재경부 장관은 금융구조조정에 얽매여 벤처기업에 눈을 돌리지 않고 있다. 정작 벤처기업들이 필요로 할 때 우리 정부는 뒤돌아 앉아 있다. 정부는 벤처기업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벤처가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는 데 온 정성을 쏟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벤처기업 스스로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벤처들은 기술만 가지고 출발하는 기업이 대부분이었다.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의 성공을 위해 마케팅비용을 개발비의 2∼3배로 책정했다. 개발도 개발이지만 결국 마케팅에 온 힘을 쏟은 것이다. 벤처기업들은 이 점을 간과해 왔다. 더구나 우리는 밖으로 향하는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수출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어왔다. 벤처기업은 지금까지 우리 경제구조와 정반대다. 밖으로 가기보다는 안에서 사업을 벌여왔다. 이를 바꾸어야 한다.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같은 인식의 전환 없이는 벤처기업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벤처기업의 성장 없이는 우리 경제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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