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삼성전자는 미디어링크와 넥스컴 직원에 대해 제기한 채용취소 및 원직복귀 요청 가처분 소송의견서에서 두뇌유출의 피해를 막기 위한 불가피성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두 회사간에는 각기 영업비밀과 관련해 동종업종에 종사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견이 있으며 또한 그것이 과연 이전직장에서 고유하게 확보했던 영업비밀인가 하는 의문은 여전하다.
한편으로는 이번 송사가 인력이동시 불명확했던 영업비밀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계기를 제공하게 되리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첨단 설계기술조차도 인터넷을 타고 급격히 전파되는 시대가 되면서 이전에 특정회사 고유의 기술로 여겨지던 기술이 더 이상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발생하고 있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이번 경우도 삼성은 이번 피소송 회사에 근무하는 개인이 갖고 있는 기술이 삼성만의 고유기술이라는 점을 밝혀야 할 입장에 처한 것이다. 넥스컴은 삼성기술자의 채용으로 유출됐다는 CDMA기술도 인터넷에 공개된 기술이며 기본 기술은 퀄컴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디어링크도 독자적으로 개발해 백본스위치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기술을 갖춘 업체로서 굳이 삼성기술을 가져올 필요도 없으며 종사업무도 다르다는 설명이다.
◇지식산업시대 직업선택의 자유는 없는가=이번 소송내용중에 보이는 「채용취소 및 원직복귀」라는 문구는 또 다른 논란을 야기시키기에 충분하다. 헌법상 보장된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는 내용이 이번 가처분 소송의 근원부터 흔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소송자체가 두뇌산업의 흐름과 연계됐다는 점에서 더욱 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로 등장한 듯하다. 퇴직 엔지니어들은 『삼성측이 벤처기업 또는 중소기업행 엔지니어들에 대해 퇴직원과 함께 쓰게 되어 있는 동종업체 취업금지 규정에 사인을 하지 않으면 퇴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이들 엔지니어 가운데 몇몇은 5∼6개월간 본인의 의사에 반해 사직을 못했다고 말한다.
또한 삼성의 주장처럼 늘상 「중소기업이 고액의 스카우트 비용을 지불하고 단체로 빼갔는가」 하는 것도 의문으로 남는다. 넥스컴측은 공채를 해 각기 다른 기간에 들어온 삼성전자 출신의 엔지니어에 대한 삼성전자측의 확인까지 있었는데도 이런 소송이 이뤄진 것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삼성의 소송은 산업구조가 두뇌산업 또는 지식산업으로 급격히 이행해 가는 과정에서 「인력유출=기술유출」이란 인식을 하게 되면서 이를 방관하기 어렵다는 고심끝에 나온 입장표현으로 인식된다. 국내 대기업들의 대다수가 채택하고 있는 퇴직원 작성시 「동종 업종에 1년내 취업을 않겠다」는 서약서가 과연 합헌적인가 하는 점도 검증되어야 할 문제다. 기업이 한 개인의 직업선택의 문제까지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은 기업이 개인을 기업의 종속물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로 파급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소송이 던져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그러나 삼성전자라는 거대기업이 이들 중소기업 2개사를 첫번째 영업비밀 침해 대상으로 삼아 가처분 소송까지 갔다는 점은 디지털 산업시대를 맞은 대기업의 고민을 보여준다. 문제는 삼성전자측이 왜 이들 중소기업을 인력유출 문제해결의 실마리로 삼으려 했느냐는 점이다. 노키아코리아 같은 회사가 삼성의 상당수 CDMA기술자를 확보해 간데 대해서는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은 채 역시 공채로 인력을 확보한 중소기업에 대해 영업비밀 침해 공방을 벌이는 것은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산업시대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일어난 이번 송사는 단순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영업비밀 침해 차원의 송사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건은 디지털 산업사회로 급격히 이행하는 가운데 일어난, 삼성으로 대변되는 대기업의 위기감을 반영한 몸짓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이재구기자 j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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