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267)

 그러나 컴퓨터 관련 기계를 만드는 곳이어서 일반 건물처럼 간단하게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외곽은 가건물을 올렸지만, 내부 시설은 첨단 공법을 이용해서 온도조절과 습도조절, 먼지 침투 방지, 소음방지시설까지 갖춰야 했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지진에 대비한 시설까지 했다. 그래서 돈이 바닥났다. 그때부터 나는 주거래 은행의 권고대로 어음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회사 역시 청계천 4가에서 안양 근교에 마련한 공장 옆으로 옮겼다. 공장 옆에 2층으로 된 조그만 건물을 올려서 사무실로 쓰고, 일부는 방을 만들어 숙소로 사용했다. 나는 하숙집에서 그 숙소로 옮겼다.

 공장 기술직원을 비롯한 관리직 직원이 늘어나면서 회사 인원은 열다섯명이 됐다. 고려방적에서는 계약금을 줬을 뿐이고, 아직 제품을 납품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금은 형편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어음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장 어음이 아닌데다 이제 시작하는 벤처기업의 어음은 문방구 어음이나 다름없어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건설업자나 설비업자들은 어음을 받는 것으로 도와줬다. 나는 그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부탁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자금이 회전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신들이 자금에 압박을 받을 때 빌려주기조차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나는 자금이 돌면 어느 일정한 금액 한도에서는 그들의 어음을 사서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어음 할인은 은행 이자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줬다. 물론, 그 어음이 부도가 나지 않는다는 단서가 붙어야 하겠지만.

 공장이 완공되기 전에 설비된 기계 일부에서는 제품이 만들어졌다. 고려방적에 납품하기로 했던 약속 날짜보다 훨씬 지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급히 만들어 공급했던 것이다. 그리고 공장이 완공되는 날 저녁에 우리는 축하 파티를 열었다.

 초여름의 저녁 날씨는 매우 화창했다. 회사 연혁에 보면 85년 6월 1일로 돼 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토요일 저녁으로 정한 것은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시간을 맞췄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결혼식을 올리는 것보다 더 들떠 있었다.

 훗날 송혜련과 결혼식을 올렸지만, 이때처럼 들뜨지는 않은 것을 보면 사업에 대한 나의 열정이 대단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성급한 판단이었지만, 벤처기업을 일으켜 약 한 해만에 성공을 했다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고난의 세월이 시작되고 있었지만, 나는 왜 모든 것이 완성된 듯한 그같은 착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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