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특집-메모리> 초호황의 "추억" 황홀한 되새김

 「다시 쓰는 메모리 반도체 신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다. 95년 최고조를 이뤘던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황금기가 4년 만에 재현되고 있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가격이 오르는 기적 같은 일이 연일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불과 한달반 전인 지난 7월 둘째주, 주력제품인 PC100규격 64M 싱크로너스 D램의 현물시장 거래 가격은 4달러대까지 떨어졌다. 96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계속됐던 가격 폭락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반도체 업계에 번졌다. 하지만 그것이 바닥이었다. 이후 D램 가격은 용수철 튀어오르듯 급격한 상승커브를 그리기 시작했다. 불과 6주 만에 64MD램 현물시장 가격은 최고가격 기준으로 10달러선을 넘어섰다. 반도체 업계에서 얘기하는 이른바 「꿈의 가격」에 도달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순익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세계 1위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의 64MD램 월 생산량은 대략 3000만개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단순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64MD램 가격 1달러 상승이 가져오는 매출 증대 효과는 월간 3000만달러다. 64MD램 가격이 4달러 오른다면 월간 매출은 1억달러 가량이 늘어난다는 계산이다. 앞으로 남은 4개월간 9달러대 가격이 유지된다고 가정할 경우, 4달러대일 때보다 무려 4억달러 이상의 추가 매출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64MD램 월간 생산량이 2000만개 가량인 현대전자와 현대반도체(구 LG반도체) 역시 매출 증가속도가 급커브를 그리고 있다.

 특히 고무적인 사실은 최근의 가격 급등 현상이 64MD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연초 64MD램과 동반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며 1달러대 초반까지 내려갔던 16MD램 가격도 최근 2달러대 중반까지 회복되면서 이른바 「쌍끌이 장세」가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64MD램과 256MD램 사이에서 한시적인 제품으로 여겨지던 128MD램이 상반기 64MD램 가격이 폭락할 때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면서 「어려운 시기에 효자노릇」을 한 것도 국내업체들에는 행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국내 반도체 3사의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40% 안팎. 호황의 과실을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40% 이상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3년간의 기나긴 불황을 겪으면서 외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의 상당수가 지난해말부터 D램 사업에서 철수하거나 축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점유율은 지난해보다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호황을 향유할 수 있는 가장 큰 비결은 불황기에도 연구개발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매출과 순익 감소로 인한 투자 여력 부족이 오히려 약이 됐다는 설명이다.

 D램 가격이 가공할 정도로 폭락했던 지난해, 삼성전자는 오히려 수천억원대의 순익을 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예를 들어 0.18미크론(1미크론은 100만분의 1m)공정 설비 도입이 전제돼야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던 256MD램 양산을 기존의 64MD램 설비로 가능케 함으로써 차세대 제품 조기출시로 인한 막대한 순익을 챙기면서 이를 64MD램의 원가 절감까지 이어지게 만든 이른바 기술 위주의 전략이 제대로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국내 반도체 산업은 이번 호황기가 전세계 D램 분야의 선두자리를 확고히 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술력과 자본력에서 경쟁업체와의 격차를 현저히 벌린 삼성전자와 LG반도체와의 통합으로 생산량 측면에서 세계 1위 자리를 넘보고 있는 현대전자가 미국의 대표적인 D램업체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일본의 NEC사와 더불어 세계 D램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이른바 빅4체제의 절반을 담당하게 될 전망이다.

 이같은 분석의 배경에는 힘의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올해 상반기 해외 D램 업체들의 마구잡이식 64MD램 증산으로 가격 폭락이 계속되자 삼성전자는 당초 2000년 상반기쯤으로 예상했던 128MD램과 256MD램 제품의 대량생산 시점을 6개월 앞당기는 이른바 인위적인 세대교체를 도모할 만큼 기술적 우위가 확보돼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공정 설비 투자없이 기존 설비만으로 256MD램 개발·조기 양산을 추진할 만큼 D램에 관한 한 삼성전자의 권위는 최고조에 달했다는 평가다. 이처럼 호황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삼성전자와 현대전자 등은 지난 3년간 미뤄왔던 설비 투자를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면서 지난 2년간 꽁꽁 얼어붙었던 국내 반도체 업체의 투자 심리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반도체 9라인 증설계획을 확정한 데 이어 10라인 설치 계획까지 수립, 본격적인 설비투자에 나서고 있다. 당초 12억달러로 잡았던 올해 설비투자 예산도 최근 18억달러로 크게 상향 조정했다. 또 현재 D램 생산라인을 올해 안으로 대부분 0.18미크론 공정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작업도 추진하는 한편 4000만달러 가량을 투자, 256MD램 3세대급 이상의 고집적 반도체 제조에 적용할 수 있는 300㎜ 웨이퍼 대응 파일럿 라인 구축에도 나서고 있다.

 현대전자도 최근 1년 동안 거의 중단했던 미 유진공장 증설계획을 재추진하는 한편 LG반도체 인수협상이 마무리되는 대로 현재 0.22미크론 공정을 사용하는 이천 반도체 생산라인을 0.18미크론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을 시작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D램가격의 고공비행은 소자산업의 이면인 반도체 재료와 장비 등 관련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동안 D램 가격 폭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던 국내 반도체 장비 및 재료 시장 경기가 완전 회복세로 돌아선 것이다.

 특히 최근 삼성전자가 반도체 9라인의 추가 투자와 신규 10라인 건설에 본격 착수한 가운데 현대전자도 기존 반도체 라인에 대한 보완투자와 신규 라인 건설을 추진하고 있어 올 하반기부터 국내 반도체 장비 및 재료 시장은 또 한번의 호황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최근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의 공급부족 현상이 심화되면서 삼성전자·LGLCD·현대전자 등 국내 LCD업체들의 설비 투자도 전년대비 2배 이상 크게 증가하고 있어 LCD 장비 사업을 병행 추진하는 국내 반도체 장비업계의 매출은 급신장세를 보일 전망이다.

 또한 한동안 주춤했던 국산 반도체 장비의 동남아지역 수출도 하반기를 기점으로 다시 활기를 띠면서 주력 수출품목이 기존의 조립 장비 위주에서 화학증착(CVD)장비, 트랙, 애셔 등 전공정 장비 분야로까지 확대되는 등 국내 반도체 장비 시장 회복을 이끌 호재들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반도체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국내 반도체 및 LCD 장비 시장이 최소 26억달러 수준은 될 것으로 예상하며 특히 하반기 들어 램버스 D램 양산에 따른 추가 설비 도입과 해외 반도체 라인 확대 투자가 본격화할 경우 전년대비 2.5배 이상의 급성장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국내 장비 시장이 빠른 회복세를 나타냄에 따라 미래산업·케이씨텍·주성엔지니어링·실리콘테크 등 국내 주요 반도체 장비업체의 영업 매출도 최근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런 추세라면 대부분의 업체들이 전년대비 100% 가량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테스트 핸들러 업체인 미래산업은 최근 신규 진출한 칩 마운터의 수출 호조와 반도체 테스트 핸들러 및 LCD 검사장비의 판매 확대에 힘입어 올해 총매출액이 지난해 170억원보다 2배 이상 증가한 540억원에 달할 전망이며 가스 장비업체인 케이씨텍도 가스캐비닛 및 웨트스테이션 장비의 판매 증가와 실리콘 캐소드 등 신규 사업 진출로 빠른 매출 확대가 예상된다.

 또한 CVD 장비업체인 주성엔지니어링은 미국 및 일본으로의 장비 수출 확대로 올해 9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으며 애셔업체인 피에스케이테크도 LCD부문 장비 판매 호조에 힘입어 올해 3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악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반기 국내 반도체 경기를 좌우할 최대 현안은 현대와 LG의 합병작업이다. 세계 2위와 5위 업체간의 합병이라는 점에서 기대만큼 걱정거리도 적지않다.

 특히 빅딜 추진과정에서 떨어질 대로 떨어진 LG반도체 종업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서로 판이한 생산라인을 어떻게 동기화해 나가느냐가 관심의 대상이다.

 최근 거센 도전을 받고 있는 다이렉트 램버스 D램이 하반기에 시장에 연착륙할 수 있느냐도 99년 하반기 이후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 판도를 좌우할 변수로 분석된다.

 또 하나 신경을 거스르는 것은 미국 반도체 업체와의 통상마찰. 특히 최근 D램산업이 빅4체제로 전환되면서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반덤핑 제소가 잇따를 것으로 우려된다. 다만 최근 세계무역기구(WTO)가 우리나라 업체들에 유리한 판정을 내렸다는 점을 감안할 경우 큰 문제가 발생할 소지는 많지 않을 전망이다.

 결론적으로 이같은 지엽적인 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된다면 국내 반도체산업을 대표하는 D램 등 올해 메모리반도체 산업은 사상 최대의 호황이었던 95년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최승철기자 scchoi@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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