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시대 덩치 큰 PC는 가라".. 포스트PC "파워 부팅"

 「PC는 저물고 포스트PC가 뜬다.」

 정보기술은 끊임없이 새로운 화두를 만들어 왔다. 70년대는 메인프레임, 80년대는 PC, 90년대는 인터넷이 키워드였다. 이제 PC보다 쉽고 간편한 정보기기들이 쏟아지면서 「포스트PC시대」가 열리고 있다.

 포스트PC란 말 그대로 PC를 대체할 새로운 제품군. 크기가 더 작고 가벼워졌다는 점에서 서브PC와도 동의어다. 언제 어디서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이동성」도 빼놓을 수 없는 포스트PC의 미덕이다. 그래서 「유비퀴터스(Ubiquitous)컴퓨터」라는 별칭으로 통한다. 또 전화, TV, 비디오, 심지어 전자레인지 같은 가전제품들과 디지털기술이 통합한다는 의미에서 정보가전이라고도 한다.

 이미 포스트PC시대의 증후군은 신기술, 신제품을 중심으로 뚜렷해지고 있다. PDA는 두말 할 필요 없는 포스트PC의 대표주자. 스리콤의 「팜Ⅶ」만 있으면 비행기에서 주식시세를 알아보고 택시 안에서 신문을 읽고 공원벤치에 앉아 영화표까지 예매한다. 친구와 E메일도 주고받을 수 있다. 이 정도면 PDA라기보다 무선컴퓨터에 가깝다.

 핸드폰도 다양한 형태의 포스트PC로 진화하고 있다. 퀄컴의 「pdQ 스마트폰(Smartphone)」은 한마디로 디지털무선전화+팜 오가나이저다. 160×240픽셀의 LCD 터치스크린에 펜으로 글씨를 써넣을 수 있고 E메일과 웹 서핑은 기본이다. 데이터퀘스트는 스마트폰 스타일의 인터넷 스크린폰이 3년 안에 미국에서만 500만개 보급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알카텔의 「웹 터치 원(Web Touch One)」은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기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독특한 제품이다. 휴대폰은 화면이 너무 작아 아무래도 웹 서핑이 불편하다는 데 착안, 컬러 노트북 크기의 LCD 터치스크린을 모니터로 채택했다. 평소엔 전화기와 팩스로 사용하다가 인터넷을 하고 싶을 땐 버튼만 한 번 눌러주면 된다. E메일부터 온라인 쇼핑까지 전화를 거는 것만큼이나 쉽다. 지난해 세빗(CeBIT)에 출품되어 가장 눈에 띄는 신제품에 수여되는 세빗 하이라이트상을 받았다. 올 가을 400달러에 시판될 예정이다.

 JVC와 샤프는 더 재미있는 제품을 선보였다. 「포켓메일(PocketMail)」은 이름처럼 주머니 속에 쏙 넣어 가지고 다니다가 간단하게 E메일을 보낼 수 있는 솔루션. 전화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전자우편을 띄울 수 있다. 케이블이나 모뎀이 전혀 필요 없다. 글자를 타이핑한 후 1∼800으로 시작되는 무료전화를 걸고 잠깐 동안 전화수화기에 포켓메일을 대고 있기만 하면 된다. 메시지는 음성신호가 되어 전화선을 타고 날아가 서버를 거쳐 수신자에게 전달된다. 가격은 저장용량에 따라 99달러에서 149달러까지로 한 달에 9.95달러의 사용요금이 붙는다. E메일은 영문 4000자까지 올릴 수 있지만 워낙 스크린이 작아 한 번에 40자씩 읽어야 한다는 게 흠이다.

 족보를 따지기 힘든 정보가전들도 포스트 PC로 합류하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함무라비법전을 돌기둥에 새겼던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인들이 진흙판 위에 글씨를 써가지고 다녔다고 추정한다. 바빌로니아시대의 도서관 유적에서는 이를 입증하는 클레이 태블릿(Clay Tablet)이 발견됐다. 인터넷 시대의 타블레트는 점토판에서 무선키보드와 전원공급장치가 딸린 첨단기기로 변하고 있다. 큐비트 테크놀로지가 내놓은 「웹 태블릿」의 무게는 2파운드, 크기는 잡지책 정도. 전화선이나 LAN에 연결하면 인터넷 서핑과 E메일이 자유롭고 무선키보드를 이용해 문자도 입력할 수 있다. 가격은 350달러.

 소니의 「디지털액자」는 디지털 영상을 수십 장 담아놓을 수 있는 요술액자다. 보기에는 그냥 작은 사진첩이지만 저장장치가 달려있어 PC나 디지털카메라의 영상파일은 물론 비디오 편지, E메일 문서까지 들어간다. 돌 사진부터 유치원 입학, 고등학교 소풍, 대학졸업, 결혼 사진까지 뮤직비디오처럼 저절로 영상이 흘러가는 디지털액자를 만들 수 있다.

 21세기엔 부엌도 정보공간이 된다. 퇴근길에 우유를 사오도록 핸드헬드 PC에 주문서를 입력하는 냉장고,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법뿐 아니라 요리재료에 주인이 먹으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성분이 들었다고 경고해 주는 지능형 전자오븐이 개발중이다.

  미국 루트저대학이 내놓은 「지능형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에는 스캐너가 부착되어 있어 음식재료의 바코드를 읽는다. 바코드에는 어떻게 음식을 조리해야 할지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오븐은 알아서 온도를 맞추고 시간까지 조절한다. 아직은 시제품이지만 식품업체가 바코드에 요리정보를 기입하고 오븐이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면 현실화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CMI월드와이드사는 미래의 주방용 정보가전 「어드밴티지 2000 키친 어플라이언스(Advantage 2000 Kitchen Appliance)」를 올 가을 미국의 메이시백화점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9인치 TV와 CD플레이어, 비디오CD, 원터치 웹브라우저 4가지 기능을 합친 정보가전도 있고 터치스크린과 바코드 스캐너가 딸린 인터넷냉장고도 있다. 가격은 품목별로 800∼1500달러 정도.

 홈엔터테인먼트의 대명사로 군림해온 가정용 비디오게임기도 첨단 정보가전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소니가 내년에 출시할 「플레이스테이션2」는 온라인게임은 물론 DVD 영화감상, 인터넷 접속기능까지 가능하다.

 안경처럼 쓰는 컴퓨터, 시계처럼 손목에 차는 컴퓨터, 심지어 옷처럼 입는 컴퓨터(Wearable Computers)를 개발하는 업체도 많다. 네덜란드 필립스는 최근 인터넷검색과 영상전송이 가능한 리스트(wrist) 폰을 내놨고, 일본 세이코도 손목시계형 PC 러퓨터(Ruputer)를 개발했다. 16비트 CPU와 128KB 메인 메모리를 갖춘 러퓨터는 아직 PC라고 부르긴 어렵지만 PDA로는 손색이 없다.

 알바테크사는 무게 26g의 안경컴퓨터를 선보였다. 이 첨단 안경을 쓰면 26인치 대형 모니터를 보는 듯한 시각체험을 할 수 있다. 마이크로옵티컬사도 안경 다리에 내장된 전자회로가 연필 굵기의 스크린에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신제품을 개발중이다.

 이제 입는 컴퓨터는 새로운 유행이다. 일본 다이와연구소는 휴대형 CD플레이어 크기의 본체와 소형컨트롤러, 헤드셋으로 이루어져 양복 윗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웨어러블 PC를, 미국 피닉스그룹은 이마에 두르는 디스플레이와 손목에 감는 키보드 배터리가 한 세트를 이루는 「피닉스2」를 내놓았다. IBM 알마덴연구소에서는 지갑컴퓨터(smart wallet computer), 벨트 컴퓨터 같은 웨어러블 PC를 연구중이다.

 IBM 연구소 폴 혼 수석부사장은 올초 뉴욕에서 열린 밀레니엄 포럼에서 「PC의 시대는 이제 저물어가고 있다」면서 「탈PC시대」를 선언했다. PC를 처음 만들어낸 업체가 이제 PC의 종말을 얘기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TV시대에 극장이 존재하듯, 워드프로세서의 등장으로 종이가 없어지지 않았듯 PC는 21세기에도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PC가 슈퍼컴퓨터급 성능을 갖추고 또다시 전문가들의 기호품이 될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첨단기술, 그 드라마틱한 무대의 주인공은 앞으로 서브PC 또는 정보가전이 차지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포스트PC가 주도할 새로운 정보혁명이 서서히 밀려오고 있다.

<이선기 기자 s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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