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업계가 자체집계하는 제품 판매량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고 있다.
IMF 이후 자제되던 과당경쟁이 올들어 시장이 회복세를 나타내면서 과거의 고무줄집계의 관행이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판매량을 몇 만 대씩 늘려잡는 것은 예삿일이고 경쟁사가 발표하는 물량에 따라 판매량 또한 춤을 추고 있다.
과열경쟁, 1등주의로 말미암아 가전 판매량이 아전인수격으로 집계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에만 TV 40만 대, 냉장고 27만 대, 세탁기 22만 대를 팔아 작년 상반기보다 판매량이 각각 26%, 42%, 46% 증가했다고 밝혔다. 주요 품목에서 내수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LG전자도 지난 6월까지 TV 40만 대, 냉장고 27만 대, 세탁기 21만 대로 작년 상반기보다 매출이 각각 27%, 10%, 42% 늘어났다고 밝히고 있다.
양사는 이같은 실적에 대해 『빅딜 파문으로 올 상반기에 정상적인 영업을 펼치지 못한 대우전자의 물량이 흡수되는 반사효과와 함께 소비심리가 회복되면서 주요 품목의 판매량이 크게 증가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꿈은 같이 꾸었지만 해몽의 기쁨은 자사의 것으로 돌리는 모습이다.
이렇다보니 당장 TV와 냉장고 부문에서 누가 1등인지 혼란스러워진다. 하지만 이같은 실적은 각 업체의 실무자들조차 놀라는 수치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를 밝힐 수는 없지만 TV의 경우 반올림한 40만 대, 즉 35만 대 이상 40만 대 이하』라고 말했다.
LG전자의 한 실무자는 『지난 6월까지 약 30만 대의 TV를 판매했는데 이것은 삼성전자보다 2만 대 가량 많은 수치』라고 밝혔다.
현재 삼성전자가 바라보는 LG전자의 상반기 TV판매량은 30만 대 이하, LG전자가 바라보는 삼성TV의 판매량은 28만 대 수준이다.
결국 양사의 TV 판매실적이 5만∼10만 대 정도 부풀려져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가전수요가 회복세를 타고 있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예년에는 5월부터 시작된 가전 비수기가 8월까지 이어지곤 했는데 올해에는 비수기없이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40만∼145만 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됐던 올해의 TV 총수요도 증가해 150만 대를 넘어설 것이라는 게 양사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올해의 판매목표라고 밝힌 90만 대, LG전자의 목표인 63만 대 만하더라도 이미 150만 대를 넘는 규모다.
양사의 계획대로라면 대우전자나 아남전자의 TV시장 점유율이 0%를 기록할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IMF 이후 가전업체들이 내실다지기에 주력하면서 증권감독원 제출자료마저 뻥튀기할 정도로 심각했던 매출부풀리기는 다소 주춤했지만 경기가 회복세를 나타내면서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기존의 잘못된 관행이 재연되고 있다』며 『디지털 경영을 경쟁적으로 외치기보다는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부터 제공하는 일이 더욱 시급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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