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획-뉴스&밀레니엄> 커버스토리.. "폐PC다이옥신" 골칫거리

 정보기술의 빠른 발전속도가 컴퓨터(PC)의 생명주기(Life Cycle)를 하루하루 단축시키고 있다.

 올들어 PC 신제품 개발주기는 대략 6개월. 10년 전만 해도 그 주기는 적어도 4년 이상이었다. 100만원에서 많게는 400만∼500만원씩 주고 구입한 PC가 내일이면 곧바로 구모델, 심지어는 골동품 취급까지 받는다. 어디 그뿐인가. 소프트웨어 역시 눈깜짝할 사이에 구기종에서 사용할 수 없는 신제품들이 쏟아지는 통에 「철 지난 PC」는 누구에게 물려주거나 부품 재사용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에 따르면 국산 PC가 본격 생산되기 시작한 지난 89년부터 98년까지 10년 동안 국내 보급된 총 PC대수는 1232만여대고 이 가운데 98년 말의 실가동대수는 730만여대. 도중에 500여만대가 용도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추세라면 10년 후인 2008년경 총 폐기대수(잠재 폐기대수)는 2000만대를 돌파할 전망이다. 이미 폐기되거나 폐기될 PC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처리되는 것일까.

 바로 이 시점에서 지난해 말 한국자원재생공사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 하나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버려진 연평균 80만대의 PC 중 그나마 20여만대만이 폐기가 확인됐을 뿐 60여만대는 방치되거나 아무렇게 버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예정대로라면 올해는 초중고교에 보급됐던 20여만대의 구형 286·386기종 등 91만대, 2000년에 129만대가 각각 용도폐기될 전망이다. 그런데 문제는 신기종 교체계획만 있지 폐기종에 대한 처리계획은 어디를 보아도 없다는 사실이다.

 PC를 구성하는 인쇄회로기판 등 전자부품에는 염색체 이상이나 기형아 출산 등을 일으키는 발암물질, 신장·간 등에 치명적 이상을 유발하는 카드뮴, 근육마비를 유발하는 납, 심장혈관 질환의 원인이 되는 바륨 등 15종의 맹독성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보다 심각한 것은 국내에서 PC가 자원절약 및 재활용촉진 품목으로 분류돼 있지 않아 대부분 소각되거나 땅 속에 유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각될 경우 납과 페놀 등이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노출된다. 또 매립할 경우는 카드뮴·알루미늄·구리 등의 중금속과 페놀 성분이 지하수를 오염시킬 위험이 높다.

 문명의 이기자 새 천년을 열어나갈 지식정보사회의 원천인 줄로만 알고 있던 PC가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야누스적인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전문가들의 우려는 보다 현실적이다. 버려진 PC부품들은 지속적으로 독을 뿜어 앞으로 2∼3년내에 큰 사회적 문제로 비화된다는 것이다.

 이와 때를 맞춰 유럽위원회(EC)는 폐컴퓨터의 리사이클링을 의무화하고 PC에 환경마크를 부착하는 등의 조치를 마련중이다. 이 조치는 PC부품에서 납·수은 등의 중금속을 없애고 메이커나 판매상들이 수명이 다한 PC를 의무적으로 수거토록 하는 것이 골자다.

 또 미국 등은 자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컴퓨터에 대해 폐기물 예치금 성격의 환경부담금을 물릴 태세다. 이에 앞서 지난 94년 미국의 환경당국이 「그린(節電)PC」 규격을 마련해서 세계적으로 「에너지스타」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선진국들의 이런 움직임은 권역내 환경문제 해결 차원을 넘어 새로운 보호무역 수단으로 내세울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그러나 국내 PC메이커들과 우리 정부의 대처 움직임은 전혀 감지되고 있지 않다.

 냉장고와 세탁기 등 가전분야의 폐기물 처리가 의무화되는 추세이긴 하지만 PC분야에서는 아예 논의조차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삼성전자·삼보컴퓨터·대우통신 등 주요 PC메이커의 경우 재처리나 회수에 대한 대책없이 무작정 PC를 쏟아내고 있다. 산업자원부·정보통신부·환경부 등 부처들은 해결방안 마련은커녕 실태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등의 경우 최근 민간주도나 정부지원으로 폐PC에 대한 회수시스템과 재활용 분해공장을 갖춰나가는 추세다. 국내에서는 민간단체인 한국컴퓨터재활용협회 정도가 286·386급 PC를 수리해서 재보급하고 있지만 실제 그 쓰임새는 매우 미미한 실정이다.

 일부 재활용업체들이 폐PC에서 금·은·고철 등 유가물을 추출하는 사업 역시 배보다 배꼽이 더 커 사업성이나 온전한 폐기물 처리와는 거리가 멀다.

 환경문제는 냉엄한 무역전쟁에서 가장 무서운 무기로 부상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자동차의 경우는 이미 구체적인 환경규제를 받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가 최근 선보인 소형 「베르나」의 부품 85% 이상이 재활용 가능 재질로 제작됐다는 사실은 PC메이커들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정보기기분야에서도 이제 환경친화적 제품이 나와야 할 때다. 하지만 이에 앞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새 천년의 지식정보사회를 이끌 주역으로서 PC메이커를 포함한 정보기기제조공급회사들의 기업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다. 무조건 많이 팔고보자는 식의 산업사회적 시각이나 전략은 환경문제나 기업경쟁력 그 어느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내 PC메이커들도 이제부터 폐PC를 회수하는 일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온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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