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끝없는 혁명 (4);제 1부 혁명전야 (3)

트랜지스터에서 IC까지

 미국과 유럽대륙이라는 양축이 주도하던 세계 전자산업계에 지각변동이 생긴 것은 1954년이었다. 이해 일본의 소니는 세계 최초로 트랜지스터식 라디오 생산에 성공했다. 소니는 이어 4년 뒤 또다시 세계 최초로 트랜지스터식 TV의 상용화에도 성공했다는 뉴스를 내놨다. 이때는 세계 전자산업을 대표하던 RCA·GE·모토롤러·CBS·EMI·필립스·지멘스 등 미국과 유럽대륙의 기라성 같은 회사들이 일제히 트랜지스터의 상용화에 발벗고 나서던 시기였다. 전세계는 소니에 관한 뉴스로 흥분했다.

 트랜지스터식 라디오를 생산했을 때 소니는 고작 창업 8년째의 병아리 기업에 불과했다. 당시 모든 기술수준에서 10년 이상 뒤져 있던 일본 전자산업계는 소니의 쾌거로 미국 및 유럽대륙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게 됐다.

 소니의 쾌거는 단지 일본의 부상을 예고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1897년 독일의 K F 브라운에 의해 발명된 신기술 음극선관이 진공관 TV수상기에 적용되기까지는 37년이 걸렸다. 1904년 J A 플레밍에 의해 개발된 진공관이 라디오로 발전하기까지는 16년, TV수상기로 발전하기까지는 30년이 걸렸다. 그런데 소니는 트랜지스터가 발명된 지 6년 만에 라디오를, 10년 만에 TV에 각각 적용함으로써 전자기술의 발전속도를 진공관 세대에 비해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단축했다. 그러니까 소니의 등장 즉, 트랜지스터 기술의 상용화는 향후 전자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소니와 일본계 전자기업들의 화려한 등장을 예고한 트랜지스터 기술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48년 미국 벨연구소의 3총사 연구원이었던 W H 브래튼, J 바딘, W B 쇼클리 등에 의해 완성됐다. 트랜지스터의 영문 명칭인 「Transistor」는 변화 또는 이전(移轉)의 뜻을 갖는 「Trans」에서 온 말로 학문적으로는 「반도체 결정 속의 도전(導電)작용을 이용한 증폭용 소자(素子)」라는 뜻을 갖고 있다. 벨연구소의 3총사는 어느날 격자 구조의 반도체 시편(試片)에 가는 도체선(導體線)을 접촉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던 중 전기신호의 증폭작용을 발견했다. 마무리 연구 끝에 이들은 이 증폭작용이 그동안 신호증폭 구실을 해왔던 진공관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신호증폭기로서의 회로를 트랜지스터라고 처음 명명했다.

 트랜지스터는 그 자체가 소형이어서 이를 채택한 전자기기는 진공관기기에 비해 그 부피를 크게 줄일 수 있는 데다 전력소비도 적었다. 특히 라디오의 경우 전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소형 경량으로 제작할 수 있어 이동과 휴대가 간편했다. 그러나 소니가 등장하기까지 트랜지스터는 진공관에 비해 잡음이 심하고 주파수 특성이 떨어지는 데다 증폭도도 좋지 않아 전자기기에 채택돼 실용화되기는 매우 힘들 것으로 예상됐었다.

 트랜지스터식 라디오와 TV를 개발한 소니의 업적이 전자산업발전의 분기점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1946년 도쿄통신공업사로 출범한 소니는 50년대 초부터 트랜지스터의 상용화에 집중 투자한 끝에 두가지의 결실을 맺었다. 하나는 트랜지스터의 성능을 진공관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또 하나는 트랜지스터 회로의 프린트 배선화(Printed Wiring)에 성공한 것이었다. 프린트 배선화 즉, 인쇄기판화는 전자기기의 소형화와 양산화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소니의 트랜지스터식 라디오가 발매되면서 가구당 1대이던 라디오 보급목표가 1인 1대로 바꿨다.

 또 라디오프로그램의 제작과 편성이 가족용 위주에서 청소년·주부·노인·심야직업 종사자 등으로 구체화됐고 TV프로그램과의 차별화도 시도됐다.

 브래튼·바딘·쇼클리는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지 8년 만인 1956년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는데 결과적으로 소니의 역할이 없었다면 수상 연도가 최소한 몇 년 연기됐거나 수상 자체가 아예 없을 뻔한 일이었다.

 소니는 트랜지스터식 라디오의 제작기술과 원리를 흑백TV·녹음기·VCR 등에 그대로 원용하게 된다. 소니의 신화는 훗날 미국과 유럽에서 신기술이 개발되면 일본에서 가장 먼저 상용화된다는 첫 전례가 됐다.

 라디오와 TV에 이어 트랜지스터식 컴퓨터도 일본에서 처음 제작됐다. 1957년 일본전기시험소(ETL)는 1백30개의 트랜지스터와 1천8백개의 다이오드를 소니의 프린트배선기술을 응용해서 설계한 기억용량 1백28워드(Word)짜리 제2세대 컴퓨터 「ETL-MARK Ⅲ」의 개발에 성공했다. ETL의 성과 역시 일본이 전세계 컴퓨터업계에 비로소 명함을 내밀게된 계기가 됐다. ETL의 트랜지스터식 컴퓨터 설계기술은 곧바로 민간기업인 도시바와 히타치제작소, 일본전기(NEC)에 전수돼 본격적인 상용컴퓨터 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했다.

 미국에서 트랜지스터식 컴퓨터가 개발된 것은 이로부터 1년 뒤인 1958년이었다. 이해 스페리랜드(유니시스 전신)는 미국 최초의 제2세대 컴퓨터인 「USSC」를, IBM은 「IBM 709」를 각각 발표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트랜지스터식 상용컴퓨터가 쏟아진 것은 1959년의 일이다. IBM의 「IBM 1401」, 최초의 미니컴퓨터인 디지털(DEC)의 「PDP-1」, 도시바의 「TOSBAC 100」, 히타치제작소의 「HITC 301」, NEC의 「NEAC 2203」 등 역사에 남을 만한 컴퓨터들이 모두 이해에 발표됐다. 이 가운데 특히 「IBM 1401」은 발표 1개월 만에 1천대가 팔리는 등 모두 1만여대가 보급되는 데 성공을 거뒀는데 1967년 경제기획원 통계국에 들여온 한국 도입1호 컴퓨터 기록도 이 기종이 갖고 있다.

 트랜지스터나 다이오드 등 고체(Solid State) 소자를 사용한 컴퓨터를 제2세대라 한다면 집적회로(IC : Integrated Circuit)를 채택한 컴퓨터는 제3세대라 한다. IC는 기존의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 등 개별적인 반도체 소자들을 저항기·콘덴서 등 다른 회로 소자들과 함께 일정한 크기의 실리콘기판 위에 집적화한 것으로서 1958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에 의해 처음 완성됐다. IC는 70년대 들어 집적된 회로수가 1천∼10만개를 실현한 대규모 집적회로(LSI : Large Scale IC)로, 80년대에는 10만개 이상을 실현한 초대규모 집적회로(VLSI : Very LSI)로 각각 발전했다.

 반도체 발전측면에서 VLSI까지의 발달과정을 보면, 우선 트랜지스터의 등장은 진공관을 1 대 1로 대체하고 크기와 소비전력을 크게 낮춘 것을 의미했다. 이런 트랜지스터 1백개가 집적된 효과와 성능을 갖고 있었던 것이 60년대 초반의 IC였다. 또한 70년대 등장한 LSI 1개는 IC 4백개와 맞먹는 성능을, 80년대 초의 VLSI는 15개의 LSI와 맞먹는 성능을 각각 구현했다.

 80년대 후반 회로간 선폭 제조기술이 1미크론 이하로 좁혀들면서 VLSI는 1백만 회로집적도를 실현했고 오는 2000년대 초반에는 도폭 0.18미크론의 1천만 회로집적도 제품도 나올 전망이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인텔의 펜티엄Ⅲ는 0.35미크론 기술에 약 7백50만개 회로집적도를 실현한 제품이다.

 전자기술의 발전과정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면 그것은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까지는 주로 일반 전자기기 즉, 가정용 전자제품의 발전에 공헌했지만 IC 이후로는 컴퓨터나 전자통신 분야에 집중적으로 공헌했다는 사실이다. IC를 채택한 전자기기가 전자제품의 꽃이라 할 수 있는 TV보다 컴퓨터에 먼저 선을 보인 것도 이런 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 대목이다.

 TV보다 앞서 발표된 최초의 IC기반 컴퓨터가 바로 1964년 IBM이 발표한 「시스템/360」이다. 오늘날의 제3세대 컴퓨터 시조이기도 한 「시스템/360」은 IBM이 독자 개발한 IC기반 초소형 회로기술(혹은 고체논리기술이라고도 함) SLT(Solid Logic Technology)를 채택해서 만든 시대적 걸작품이었다. 「시스템/360」은 마이크로프로그램코드와 표준 아키텍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모델간 패밀리 호환성을 구현한 최초의 컴퓨터였다.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컴퓨터도 이 기종이었다. 명칭에서 360은 360도 전방위 호환이 가능하다는 뜻에서 부쳐진 것으로 IBM은 「시스템/360」을 통해 컴퓨터회사로서의 독보적 위치를 확고히 다질 수 있었다.

 한편 IC의 완성 과정에서 주요 역할을 했던 회사 가운데 TI 외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라이벌이었던 페어차일드다. 페어차일드 역시 TI 못지 않게 IC 부문에서 많은 특허를 갖고 있었는데 마침내 1959년 두 회사는 상호 특허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두 회사의 계약은 IC분야 발전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해줬다. 1964년 IBM의 「시스템/360」에 이어 1966년 RCA가 최초의 집적회로식 TV를 개발한 것도 두 회사의 특허계약 실효와 직간접 영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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