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자동제어시스템(BAS)업계가 가장 우려하던 덤핑입찰이 결국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조달청이 최근 실시한 예가 20억8천만원짜리 서울시 지하철 6호선 20여개 역사 공조시설 프로젝트가 예가의 18%에 불과한 3억7천만원에 S사에 낙찰됐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입찰에서 J사는 8억4천만원, B사는 7억3천만원, N사는 8억6천만원을 각각 투찰한 것으로 알려져 이번 입찰에 참여했던 모든 업체가 파상적인 가격공세에 나선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최고가격으로 나타난 N사의 투찰가격도 예가의 42%에 불과하다니 BAS업계의 가격경쟁이 이젠 위험수위를 넘은 것 같다. 지난해 예가의 50∼60% 수준으로 서울시 상수도시설물 관리시스템을 수주했던 모 시스템통합(SI)업체가 경쟁사는 물론 관련업계의 심한 비난을 받았던 사례와 비교하면 이번 입찰에서 BAS업체들이 보인 행동은 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이번 입찰은 기묘년을 여는 첫번째 프로젝트다. 따라서 수·발주자는 물론 관련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덤핑시비에 휘말린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혹시 이것이 빌미가 되어 그동안 업계 스스로 자제해 왔던 대립과 갈등의 소모적인 경쟁풍토가 재연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물론 이같은 덤핑입찰을 하지 않을 수 없는 BAS업체들의 어려운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도한 덤핑경쟁은 공급자는 물론 수요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칫하면 업계 전체를 공멸의 길로 몰고 가는 위험스런 발상이 바로 덤핑이다. 따라서 이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자제해야 할 바람직하지 못한 상행위가 올들어 처음 시행된 공개입찰에서부터 빚어졌다니 참으로 한심하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조달청이 향후 프로젝트를 이번과 같이 분리 발주할 경우 덤핑경쟁이 재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가 빚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조달청이 제어 및 직접디지털제어기(DDC) 등 본체 분야와 밸브·케이블·센서 등 단말기 분야를 나눠 발주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핵심제어부 사업권을 획득하면 여타 기기 입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이라는 관련업계의 기대감이 이같은 덤핑입찰을 부채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설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동안 덤핑경쟁을 자제해 왔던 관련업계가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런 점이다. 첫번째 공공입찰에서 빚어진 이러한 가격공세가 20∼30개로 예상되는 추가 공공 BAS프로젝트 발주시 재연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덤핑 응찰가격이 향후 공공프로젝트 예가산정에 반영되는 것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럴 경우 채산성 악화는 물론 부실공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이번 입찰을 주도한 조달청의 한 관계자는 『상상하기 어려운 가격으로 낙찰된 만큼 부실공사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감독에 신경이 쓰인다』며 『앞으로도 이러한 덤핑입찰이 계속될 경우 예가산정시 이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들이 귀기울여 들어야 할 대목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건설경기 침체로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고 있는 BAS업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수시장을 놓고 제살깎기식 덤핑입찰을 자행하기보다는 해외시장으로 공격의 물꼬를 돌려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특히 과당경쟁으로 악화된 채산성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아시아·미국·유럽 등 해외시장 개척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감안하면 최근 일부 업체가 미국의 「미국냉열공조기술인협회(ASHARE)99 전시회」, 독일의 「국제위생냉열공조전시회(ISH 99)」, 태국의 「조명·IBS 자동화 전시회(엘레닉스)」 등에 동참하는 등 해외대리점 확보 및 제품 알리기에 나선 것은 매우 바람직한 행보라고 본다.
우리 BAS업계가 IMF사태로 촉발된 위기국면을 해소하고 채산성 악화로 심화된 경영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제경쟁력을 갖춘 전략상품을 개발, 틈새시장 공략에 나서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업계의 노력만으로는 BAS업계가 총체적인 난국을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 수반되어야 한다.
관계당국은 덤핑시비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높은 최저가격 낙찰제를 합리적인 방향으로 개선하고 아울러 산업활성화를 위한 다각적인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BAS산업을 살리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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