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년 국산 라디오를 처음 생산할 당시 금성사(현 LG전자) 과장으로 출발해 국내 최초의 전문경영인으로 LG전자의 회장을 거친 전자업계 원로 이헌조 고문.
그 당시만 해도 이헌조 과장은 처음 개발한 국산 라디오를 팔기 위해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전기·전자제품의 집결지인 종로 장사동을 헤매고 다녀야 했다. 그러나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일제에 비해 값도 비싸고 디자인도 엉망인 국산 라디오를 거들떠보는 판매상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40년이 흐른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의 가전생산국의 하나로 확고한 위치를 다져가고 있다.
『참으로 어려웠던 때였습니다. 6.25 직후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80달러로 전 국민은 극빈생활에 허덕여야 했습니다. 당시 현대적 의미의 산업이라고는 밀가루·설탕·섬유·비누 등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생필품산업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58년 마침내 국내 최초의 전기·전자업체인 금성사가 설립되고 이 고문은 럭키화학에서 금성사의 영업과장으로 발령을 받고 국내 전자산업 영업사원 1호로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의욕만 있었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회사설립과 함께 독일인 기술자 헨케씨를 영입하고 기술인력을 모집해 설계팀을 구성한 지 1년만인 59년 전자제품 1호인 5개의 진공관이 내장된 5구 진공관식 라디오(모델명 A501)가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커다란 모험으로 시작된 금성사의 전자산업은 출범 당시부터 많은 난관에 부딪힌다. 국산 1호 라디오가 나온 당시 이미 세계 라디오기술은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 방식으로 이전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국내 첫 전자제품인 라디오는 우리 기술로 만들었지만 그 이후에는 세계 유수의 제품을 들여와 이를 분해하고 역으로 조립하는 리버스엔지니어링기법을 통해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게 된다.
그러나 금성사의 라디오사업은 5.16으로 인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맞는다. 경제발전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한편 의식개혁작업으로 새마을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한 혁명정부는 상징적으로 국산제품인 금성사 라디오를 구입해 전국에 보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고문은 기업가들의 개척정신, 그리고 잘살아 보겠다는 국민들의 집념이 오늘날 국내 가전산업이 세계적인 위치에 올라설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고 확신한다.
이렇게 어렵게 일궈놓은 국내 가전산업이 최근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한 이 고문은 이같은 상황은 일천한 기술축적에서 빚어진 당연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노동력(Phisical Power)을 앞세워 가전산업을 이끌어왔지만 앞으로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기술력(Mental Power)을 갖고 경쟁해야 한다는 게 이 고문의 견해다.
<양승욱기자 swy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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