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103)

 연구실에서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에 야전 침대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신참 기술실 직원이 출근을 하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들은 대학을 나오기도 했고, 군대를 다녀와서 사회에 나왔기 때문에 나보다 나이가 들었지만, 회사에 들어온 경력이 뒤졌기 때문에 나를 선배 대우했다. 그러나 선배라고 호칭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어려워하면서 대화에 존댓말을 쓸 뿐이다. 더구나 사장과 실장이 나에 대해 기대를 하는 것을 알고는 내 앞에서 매우 조심하는 눈치였다. 그들이 출근한 후에 나는 지하 보일러실로 내려갔다. 그곳에 가스 레인지와 냄비를 놓고 회사에서 밤을 새울 때 라면을 끓여 먹었다. 처음에는 연구실에서 라면을 끓였지만, 그 냄새 때문에 지하로 내려간 것이다.

 더러는 중년 남자인 보일러 관리인과 함께 먹을 때도 있다. 그는 나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밥을 먹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끼니 때마다 사 먹으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나는 라면으로 대신했다. 그렇게 해서 남는 돈으로 원서를 샀던 것이다. 어쩌다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을 때는 마치 컴퓨터 원서를 씹어 먹는 기분이 들어 여간 아깝지 않았다. 나의 직장생활은 그토록 궁핍했지만 무엇인가 희망이 가득 차 있는 기분이 들었다. 라면을 바삐 먹고 있을 때 기술실 직원이 내려와서 나를 찾았다.

 『최영준씨, 시골에서 전화가 걸려 왔어요.』

 『곧 올라갈 것입니다.』

 나는 남은 라면을 먹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러나 그 직원은 재촉했다.

 『목포 집이라고 하는데요, 형이 돌아가셨다고 하는데요?』

 나는 깜짝 놀라면서 젓가락을 놓았다.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뭐라고요?』

 혹시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하고 반문했다. 나보다 두 살이 많은 형은 건강한 체격이었다. 그가 죽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잘못 들은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사람의 죽음이란 건강하고 젊다고 해서 비켜가는 것은 아니었다.

 『형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조금 있다 다시 전화하신다고 했어요.』

 나는 먹던 라면을 내려놓고 황급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승강기를 타고 사무실로 올라가면서 나는 문득 어머니가 형의 사주점을 봤다는 말이 상기됐다. 형이 빨리 결혼하면 요절할 팔자가 나왔다는 어머니 말이 떠오르자 소름이 오싹 끼쳤다. 형은 아직 결혼하지 않았는데 왜 요절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운명에 대한 저항감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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