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글로벌화 10대 과제> 국제표준화 활동 강화

 21세기에는 「표준(standard)」이 「기술(technology)」을 지배한다.

 지금까지 국제경쟁력을 좌우하는 변수가 품질·성능·가격을 결정하는 「기술」이었지만 다가올 21세기에는 「표준」이 경쟁력을 결정하는 확실한 잣대로 자리잡게 된다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과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신제품을 개발해도 국제표준화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한낱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수 있다. 반면 기술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국제표준화를 이뤄내면 동조세력을 등에 업고 많은 수요를 창출하며 시장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기술을 토대로 한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전자·정보통신을 비롯한 하이테크산업은 갈수록 표준화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차세대 멀티미디어기기인 DVD의 상용화가 늦어지고 있는 것은 품질·기술·가격이란 고전적 변수보다는 필립스-소니 진영과 도시바-마쓰시타 등 연합군 세력간 표준화를 둘러싼 끝없는 세력싸움에 기인한 것이다. 최근 「한국판 워크맨」으로 불리며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는 「MP3」 역시 궁극적으로 국제표준을 창출해 내지 않고서는 세계적인 히트상품 대열에 올라설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국제표준화가 시장지배력에 미치는 영향력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세계 굴지의 전자·정보통신업체들은 신제품을 출시하기에 앞서 국제표준을 이끌어내기 위해 경쟁업체와의 합종연횡까지 불사하고 있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표준화를 둘러싼 강대국간의 세력싸움을 「표준화전쟁」이라고까지 확대 해석하고 있는 상황이다.

 표준화의 주체가 업계나 단체 중심에서 각국의 대표로 이루어진 표준화 단체로 옮겨지면서 표준화를 둘러싼 세계 각국의 전쟁은 더욱 신경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뜻을 같이하는 동조세력이 상대세력을 압도할 경우 그 기술이 바로 국제표준으로 사실상 굳혀져 왔으나 최근 들어선 국제표준화기구를 통해 공식적인 국제표준화가 이루어지는 추세여서 국제표준이 더욱 강력한 구속력을 갖게 됐다.

 현재 전자·정보통신부문의 국제표준화를 주관하는 단체는 국제표준화기구(ISO)를 비롯,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국제전기통신연맹(ITU) 등으로 압축된다. 이들 세 기구는 태동 뿌리가 달라 표준화 제정의 카테고리와 성격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으나 최근엔 정보가전의 등장, 방송·통신·컴퓨터의 결합 등 기술의 복합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공통규격 제정 등 협력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각 국제표준화기구에는 분야별로 TC라고 불리는 전문위원회를 축으로 수백개의 분과위원회(SC)와 수천개의 워킹그룹(WG)을 두고 지구상에 첫선을 보이는 모든 기술을 세계가 공통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국제표준을 제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사안이 중요한 것은 특별위원회나 JC라 불리는 국제기구간 공통위원회를 두어 특별관리한다.

 이처럼 수많은 실무기구를 통해 만들어지는 전자·정보통신 분야 기술에 대한 국제표준화만도 연간 수만개다. 세계 전자·정보통신업체들은 이 표준을 근간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만들어 판다. 최근엔 인터넷 관련기술 등 최첨단기술까지 국제표준화 논의가 급진전, 표준화의 사각지대가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

 이에 따라 표준화기구나 산하 실무기구에 활동폭을 넓혀 자국기술을 국제표준에 반영,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려는 선진국들의 주도권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심지어 참여국별로 순회 개최되는 표준화 회의까지 유치하기 위한 물밑경쟁이 치열하며 실무위원회의 대표권을 확보하기 위한 눈치싸움도 심화되고 있다. 이는 각국의 합의에 의해 하나의 표준이 제정되지만 결국 각 실무그룹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의 활약상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제표준화에 대한 국민적인 인식과 각계의 대응력이 떨어진다. 국제표준화 반영에 중요한 연결고리인 각종 국제표준화기구의 활동도 극히 미진하다. 물론 최근 들어 국제표준화회의를 적극 유치하고 동영상압축전문가그룹(MPEG)1∼4규격 관련 실무위원회 등 활동분야를 넓히고 있지만 여전히 국제표준화기구에서 국내 전문가들의 활약은 미약하다. 실제로 수많은 TC와 SC, WG그룹을 대표하는 장(長) 중에서 한국인은 손에 꼽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WTO체제 출범 이후 지역블록별로 분산된 표준들이 표준화기구를 통한 국제표준으로 점차 통합돼 국제표준화가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최대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정부와 산·학·연 공조체제를 구축, 국제표준화에 대한 적극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정부 차원의 표준화에 대한 인식전환과 표준화 관련 부처의 통폐합이 시급하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국내에는 많은 표준화 전문가들이 있으나 이들간 정보교류와 공조체제도 취약하다. 따라서 정부를 축으로 산·학·연간 표준화 관련 정보인프라를 구축, 보다 치밀한 대응이 필요하다. 특히 최근엔 국제표준을 내세워 선진국들이 품질적합성 평가를 상호 인정해주는 MRA가 핫이슈로 떠올라 공동대응이 어느 때보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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