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몬정보기술 변기태 사장(40)은 가장 값진 재산을 지하창고에 숨겨 두고 산다. 대학시절부터 차곡차곡 모아 놓은 3천여권의 책이 그에겐 가보나 마찬가지. 남아수독오거서(男兒修讀五車書)란 말도 있지만 그가 다섯 수레도 넘을 만큼 많은 책들을 수집하게 된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시집이나 소설부터 산문집, 역사적인 문건까지 그의 서가를 빼곡이 메운 책들은 모두 산(山)에 대한 내용뿐이다. 산에 대한 책 수집은 지난 20년간 계속돼온 그의 취미다.
『왜 산에 대한 책만 수집하느냐구요? 젊은 시절부터 주말이면 어김없이 북한산에 오를 만큼 산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이가 들어 등산을 못하게 되면 그땐 무슨 낙으로 이 세상 살아가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면 뭐 산에 대한 책이라도 실컷 읽어야지 하면서 장난 삼아 한 권 두 권 사들이기 시작한 겁니다.』
인사동이나 청계천 일대를 뒤져 찾아낸 책들 중엔 희귀서적이나 고서들도 많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소절 쯤 외우는 산악인들의 애송시 「설악산 이야기」 원본도 가지고 있다. 금강산에 대한 책 1백20권 중 1백권을 추려 지난 가을엔 한국산서회 주최로 1주일간 교보문고에서 「금강산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변 사장이 이처럼 산에 대한 책에 천착하는 것은 태백산맥 줄기의 산속 마을 봉화에서 보낸 유년의 추억이 산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열정이 넘치던 대학시절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을 보고 싶다며 후배와 함께 남미 페루의 와스카랑 등정에 나서기도 했다.
『그때가 83년 12월이었죠. 안데스의 최고봉 아콘카구아를 거친 후 리마에서 다시 와스카랑에 도전했습니다. 여기가 겨울이면 남미는 한여름이죠. 제가 알기로 우기인 여름에 와스카랑에 오른 사람은 없었어요. 주변 사람들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말렸죠.』
결국 그 등반길은 성공으로 끝나지 못했다. 하지만 악천후 속에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와스카랑의 눈부신 설경은 평생 잊지 못할 장관으로 남아 있다.
『정착 위험한 순간은 산에서가 아니라 잉카유적지 리마로 돌아와서였습니다. 호텔 문을 들어서는데 한 흑인이 옆구리에 기관단총을 들이댔죠. 당황해서 서툰 현지말로 「이거 장난이겠죠?」라고 묻는 순간 호텔 로비에 관광객들이 모두 엎드려 있는 게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땐 아찔했지만 돈 3천달러와 2대의 카메라,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까지 뺏기는 바람에 반팔 티에 숏팬츠 차림으로 김포공항을 들어섰던 순간만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사업을 시작한 뒤론 이런 모험을 생각할 수 없게 됐지만 언젠가 와스카랑에도 재도전을 해 보고 산악도서관을 지어 산사람들과 산에 얽힌 추억담을 얘기하며 사는 게 그의 꿈이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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