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SW의 기술이 세계 수준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국산 SW의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과 어깨를 견줄 만하며 다만 자금과 마케팅 능력의 부족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할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국산 SW의 수준은 매우 낮아서 외국으로 진출한다 하더라도 전혀 승산이 없으며, 국내에서도 애국심에 호소하는 방법을 사용해서 겨우 생존하고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SW 분야의 특수성을 깨닫지 못하고 다른 분야에서의 경험을 SW 분야에 바로 적용하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
사실 SW 분야는 국내 전 산업 분야 중에서 가장 먼저 무한경쟁에 돌입했던 분야라고 볼 수 있다. SW 산업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 산업의 예만 보더라도 충무로에서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와 할리우드에서 막대한 예산으로 만든 영화가 같은 영화관에서 상영되면서 관객의 선택을 기다리는 입장에 처해 있다. 관객은 재미있는 영화를 보러 간다. 아무리 국산 영화라고 할지라도 재미가 없다면 보러갈 관객은 없을 것이다.
그나마 영화는 스크린 쿼터제라는 장치 때문에 어느 정도 보호될 수 있지만 패키지 SW는 이러한 보호막도 전혀 없이 처음부터 성능만으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W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에만 비추어서 SW 분야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자면 국산 가전제품에서의 경우를 바로 국산 SW에 적용하는 것이다. 국산 가전제품들은 오랜 기간 보호되었다. 원래의 취지는 취약한 국내 산업을 보호해서 경쟁력을 높인 다음에 세계로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오랜 기간의 특혜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된 품목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무조건 국산품을 보호하는 방법만으로는 경쟁력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점이 입증된 셈이다.
그러나 SW의 경우는 가전제품과는 다르다. 국산 SW는 보호된 적도 없고 성능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이 팔린 적도 없다. 아무리 국내라고 할지라도 세계적인 수준의 제품이 아니라면 시장점유율 1위는 불가능하다. 바꿔 말해서 국내 시장점유율 1위의 SW라면 국적과 상관없이 세계적인 수준의 제품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능은 떨어지지만 애국심에 호소해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가 결국에는 외국 제품에 고전하는 SW의 예로서 아래아한글을 언급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아래아한글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에 비해서 손색이 없는 세계적인 수준의 제품이다. 아래아한글이 고전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에 비해 성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엑셀을 포함한 오피스라는 통합 솔루션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즉 싸움의 무대가 워드프로세서 분야에서 통합 솔루션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지 아래아한글 자체가 성능이 떨어져서는 아닌 것이다. SW 분야에 한해서는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방법만으로 경쟁력도 없는 제품을 판매해 수익을 챙기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국내 SW 업체들은 국내에서 성능이 입증된 제품이라면 자신감을 가지고 해외로 나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안철수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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