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2000년, 세계 2차전지 시장을 잡아라.」
반도체와 LCD에 버금가는 잠재력을 지닌 미래산업인 세계 2차전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국내 재벌 그룹의 대혈투가 시작됐다.
목표는 세계 2차 전지 시장점유율을 최소한 10%는 확보하는 것. 현재 금액으로 따져도 어림잡아 6천억원에 달하는 황금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국내 대기업의 움직임이 올해를 기점으로 본격화하고 있다.
올해 현재 리튬이온전지·리튬폴리머전지 등 차세대 2차전지 사업 참여를 공식 선언한 기업만도 삼성전관·LG화학·SKC·(주)새한·한일베일런스 등 5개다.
여기에다 자동차용 연료전지 사업 추진을 모색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성우에너지·한국타이어를 합치면 줄잡아 10여개의 국내 굴지 기업이 2차전지 사업에 발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기업 가운데 가장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업체는 삼성전관과 LG화학이다. LG화학과 삼성전관은 이미 파일럿 생산설비를 활용, 샘플용 리튬이온전지를 생산하고 있으며 현재 진행중인 대규모 생산라인 구축작업을 내년에 마무리짓고 본격 양산에 나선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94년부터 전지사업을 전개해온 삼성전관은 지난해말 니켈수소전지를 본격 생산한 데 이어 최근에는 원통형 리튬이온전지를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소량 판매하고 있다.
이 회사는 현재 월 5만개 정도 출하하고 있는 원통형 리튬이온전지 생산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대량 수요가 예상되는 각형 리튬이온전지 생산에도 조만간 나설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삼성전관은 삼성종합기술원과 공동으로 개발한 리튬폴리머전지를 오는 2000년경부터 생산한다는 잠정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일본에서 도입한 장비로 니켈수소전지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2차전지 사업을 본격화한 LG화학은 휴대폰·노트북·캠코더에 사용되는 리튬이온전지 양산공장을 건설, 이르면 내년 초부터 본격 생산에 나설 계획이다. LG화학은 이를 위해 1천억원 정도를 투입해 월 2백만개 정도의 생산능력을 지닌 리튬이온전지 공장을 청주에 건립하고 있다. 청주공장에서는 원통형·각형 리튬이온전지를 병행 생산한다는 게 LG화학의 복안이다.
LG화학 심윤식 전지사업담당 이사는 『국내에서 리튬이온전지를 본격 양산하는 것은 LG화학이 처음이며 월 2백만개 생산능력은 국내 리튬이온전지 수요를 충족하고도 남아 이에 따라 1천5백억원 상당의 수입대체 효과를 거두게 된다』고 설명했다.
LG화학은 사업 초기연도인 내년에 세계 리튬이온전지 시장의 3% 정도를 차지하고 앞으로 10%대 이상으로 점유율을 높여나간다는 전략을 수립해놓고 있다.
특히 LG화학은 최근 국내 처음으로 리튬이온전지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 자체 개발한 리튬이온전지를 수출해 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난 96년부터 2차전지 사업 참여를 본격 선언한 SKC도 주목된다. 특히 SKC는 최근 원통형 리튬이온전지를 개발, 이르면 내년초부터 샘플 생산에 나선다고 발표해 짧은 시일에 전지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SKC는 그동안 천안연구소와 미국 뉴저지주 연구센터에서 리튬이온전지를 공동 개발해왔고 생산공정이 리튬이온전지와 비슷한 비디오테이프 생산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조기에 리튬이온전지를 양산할 수 있는 기술토대를 구축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오는 2000년부터 리튬이온전지 생산에 본격 나서 전 세계시장의 10% 정도를 공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SKC는 전지 연구와 개발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유사 장비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한다는 차원에서 기초·코팅·조립·극판 등 부문별 30명으로 구성된 수원공장 리튬이온 2차전지 개발팀을 충남 천안 비디오테이프 공장과 통폐합하는 한편 내년께 5백억원 정도를 투입해 천안 비디오테이프 공장이나 충북 진천 공장 가운데 한 군데에 리튬이온전지 양산라인을 구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새한도 최근 2차전지 사업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혀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다크호스다. (주)새한은 그동안 연구실 단계에서 추진해온 리튬폴리머·리튬이온 등 2차전지 사업을 본격화한다는 구상 아래 이를 전담할 전지사업단(단장 이재관 새한그룹 부회장)을 발족했다. 이 회사는 전지사업단이 우선 리튬이온전지를 휴대폰·노트북PC에 사용할 수 있도록 조립하는 전지팩 사업에 나서고 이를 바탕으로 2차전지를 직접 생산, 공급하는 방향으로 사업범위를 확대해나가기로 했다.
(주)새한은 오는 99년 3월까지 리튬이온전지·리튬폴리머전지 개발을 마무리짓고 99년 6월경 샘플생산에 들어가 2000년경 차세대 2차전지를 본격 양산한다는 전지사업 목표를 설정해 놓고 있다. 특히 새한그룹은 그동안 새한미디어와 새한으로 이원화됐던 2차전지 사업 추진 주체를 (주)새한으로 단일화, 체계적인 2차전지 개발과 양산을 위한 틀을 마련한 바 있다.
한편 국내 대부분의 2차전지 업체들이 리튬이온전지 사업에 우선 치중하는 데 비해 한일베일런스는 차세대 2차전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리튬폴리머전지 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리튬폴리머전지는 리튬이온전지보다 안전하고 성능이 우수한데다 자유로운 형태로 전지 제작이 가능, 차세대 2차전지 시장의 주역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를 양산하는 기업은 전세계적으로 전무, 한일베일런스는 리튬폴리머전지 분야에는 가장 앞서나간다고 할 수 있다.
이미 한일베일런스는 지난해 총 4백억원을 투자해 경기 용인에 리튬폴리머 양산공장을 건설하고 연산 1천5백만셀의 생산라인을 도입해 내년부터 본격 양산한다는 주요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한일베일런스는 최근 리튬폴리머전지 샘플을 생산할 수 있는 파일럿 라인을 갖춰 조만간 국산 리튬폴리머 전지가 생산될 전망이다.
국내 재벌기업이 오는 2000년을 목표로 세계 유력 2차전지 업체 반열에 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나 국내 업체들이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극복해야 할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국내에서 2차전지를 생산한다고 하는 업체들 모두 샘플 생산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2차전지 사업의 경우 샘플 생산과 양산은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한다』고 업계 전문가는 지적하면서 『국내 업체들이 양산설비를 구축, 상품화된 2차전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장비 세팅은 물론 품질·수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2차전지 설비기술을 가진 일본 업체들이 전지 관련 생산장비 국외 반출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어 돈을 주고도 전지 생산장비를 구할 수 없는 현실이다. 또한 2차전지 생산 경험이 전혀없는 국내 전지업체들이 샘플라인 수준의 전지 품질을 양산라인에서 유지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여기에다 우리를 견제하고 있는 일본 전지업체들이 가격을 무차별 인하할 경우 투자비는커녕 생산비도 건지기 어렵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문제는 또 있다. 그동안 국내 전지업체의 동향을 예의 주시해온 외국 전지 특허기술 보유업체들이 국내에서 2차전지가 본격 생산되는 것을 계기로 특허료 등 지적 재산권 문제를 제기할 공산이 크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 마련도 시급한 실정이다.
이와 관련, 업계 전문가는 『일부 전지 대기업들이 자존심을 의식해서인지 지나치게 홍보 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삼성전관이 세계 최대용량 리튬이온전지를 개발했다고 하면 LG화학이 니켈수소전지를 본격 생산한다고 밝히고, LG화학이 리튬이온전지를 국내 처음으로 수출한다고 주장하면 삼성전관이 뒤질세라 리튬이온전지를 본격 출하한다고 홍보하는 식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
이는 국내 전지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일본 등 외국업체를 자극해 결국 국내업체가 앞으로 전지사업을 원만히 이끌어가는 데 제약 요소로 등장할 것이라고 이 전문가는 밝히면서 더욱 내실있는 전지사업 전개 전략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이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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