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9월 어느날 용산의 한 조립매장에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친다. 조립의 마지막 단계에 있던 상인은 깜짝 놀라며
『누, 누구시죠?』
『당신 지금 뭐하는 거야? 다 알고 왔어. 윈도98 불법복제중이지?』
『….』
경찰은 입을 떼지 못하고 있는 매장 주인을 구석으로 몰아붙이며 은근한 목소리로
『조금만 써. 봐줄게.』
『네?? 아, 네. 여기.』
『이게 뭐야? 웬 껌값?』
경찰은 한껏 고조된 목소리로 더 크게 외친다.
『당신 말야, 윈도96하고 윈도97도 그렇게 많이 복사했다며?』
『???!!』
영화 「투캅스」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위의 상황이 논픽션이라는 것은 우리 컴퓨터 조립업계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윈도98의 공급가격을 둘러싸고 용산상가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간 협상이 결렬되면서 이처럼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벌어진 것.
용산의 조립업체들은 MS가 저렴한 가격으로 윈도98을 공급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하지만 MS는 한국의 조립상가가 갖고 있는 특수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따라서 공급가에 따른 어떠한 협상도 있을 수 없다며 테이블을 거둬가 버렸다.
MS와의 협상결렬로 조립업체들은 장사하기가 힘들어졌다고 하소연한다. 윈도98을 구입해서 PC에 탑재한 후 소비자들에게 판매할 경우 소비자는 가격이 비싸 PC의 구입을 꺼리고, 그렇다고 윈도98을 탑재하지 않으면 제품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 정품을 사서 손해를 보고 팔 수는 없는 입장인 만큼 업체들로서는 결국 법을 어겨가면서 윈도98을 복제할 수밖에 없다.
경찰과 MS측은 엄격한 법집행 의사를 밝히고 나섰고, 이런 와중에 일부 경찰들의 함정단속·금품요구 등 부정행위까지 나타나고 있다.
용산의 상인들조차도 불법복제라는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야 한다는 대명제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매번 그 타깃이 용산이 되고 있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소비자에 대한 어떠한 계도노력 없이 매번 업체들만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일면 타당성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인상가의 한 상인은 『소비자가 윈도98의 탑재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당한 가격을 치르려는 경우는 별로 없다』며 이번 협상결렬로 간신히 살아나려는 경기가 수그러들 것을 우려했다.
MS와 조립업계 양측의 주장만 팽팽히 맞선 채 오늘도 용산에서는 단속경찰과 업체간 숨바꼭질이 계속되고 있다.
〈허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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