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간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온 삼성전자와 겨룰 만한 거인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인가.
현대전자와 LG반도체를 합병시킨다는 재계의 반도체 부문 구조조정 방안이 경영권 향배를 둘러싼 양대 그룹간 막판 협상이 진통을 거듭하면서 이의 성사 여부와 업계에 미칠 파장에 전자업계의 촉각이 쏠리고 있다.
일단 양사의 반도체 부문 합병이 5대 그룹간에 이뤄진 신사협정이라는 측면에서 성사가능성은 90% 이상이라는 것이 업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하지만 양대 그룹 모두 고위층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데다 2년 만에 처음으로 반도체 가격이 안정세를 찾고 있다는 점에서 쉽사리 어느 한쪽이 주도권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특히 양사의 합병은 국내 재계는 물론 세계 메모리 반도체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핵폭탄급 사건」이라는 점에서 중재역할을 맡고 있는 전경련이나 정부가 특정 그룹의 손을 들어주기는 더욱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우선 양사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을 단순합할 경우 생산 능력면에서 1위 업체인 삼성전자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삼성전자를 능가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삼성의 64MD램 생산량은 월 1천5백만개 내외.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생산능력이 각각 7백만∼8백만개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돼 64MD램의 생산 능력은 삼성전자와 거의 비슷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16MD램의 경우 LG반도체가 세계 1위 업체라는 점을 감안할 경우 전반적인 생산 능력과 시장지배력은 현대전자·LG반도체의 합병사가 우위에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메모리 반도체 시황이 호전될 경우 이번 구조조정으로 향후 재계 순위가 뒤바뀔 가능성도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우리나라와 메모리 반도체시장을 양분해온 일본의 일부 업체들이 D램 사업에서 손을 떼거나 대폭 축소하는 움직임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모처럼 맞이한 호기를 순순히 내주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여기에 양사의 합병이 국내 반도체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무용론이 아직까지 잠복해 있는 상황이라는 점도 변수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구조조정에 포함된 나머지 업종들이 대부분 비좁은 내수시장에서 경쟁을 벌이는 과잉 중복투자 업종인 반면 반도체 산업은 전체 생산량의 90% 이상을 해외에 내다파는 수출주도형 사업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특히 양사의 생산라인이 판이하게 달라 합병 이후 라인 재정비 작업에 엄청난 투자가 소요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무리한 인위적 조정보다 자연스러운 3사 체제가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번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합병이 성사될 경우 국내 반도체 산업 구조는 물론 세계 반도체시장 구조에 한바탕 회오리 바람이 불어닥칠 것은 분명해보인다.
무엇보다 이번 구조조정에서 반도체분야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업체는 향후 차세대 제품에 대한 기술개발 투자가 한곳으로 집중됨에 따라 그동안 삼성전자와 일부 일본업체들보다 뒤처진 것으로 평가받던 기술력이 한 단계 향상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백56MD램 이상의 고집적 제품으로 갈수록 설비투자보다 기술개발투자의 비중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양사의 합병으로 얻는 시너지가 적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또한 이번 국내 반도체 산업의 구조조정이 전통적인 메모리 강국인 일본과 신 메모리 대국을 꿈꾸는 대만 반도체업계의 구조조정을 가속화시킬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최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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