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작고 효율적인 정부의 구현

정보산업 관련 정부부처간 및 부처 산하단체간의 업무중복이 심화되고 있다. 케이블TV 및 게임, 전자출판물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 산업을 둘러싸고 문화관광부와 정보통신부가 불편한 관계이고, 교육용 소프트웨어와 관련해서는 교육부와 정보통신부 산하단체가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통부와 문화부가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 개정안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와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

무릇 산업환경이 변하거나 기존 산업의 틀로는 제대로 담아넣을 수 없는 새로운 유망산업이 출현할 때면 부처간 산하로 끌어들이기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나라 형편도 형편이거니와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하는 마당에 이같은 정책의 중복문제는 그냥 넘겨버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게임분야에서 문화부가 실시중인 유망 중소업체에 대한 자금지원 및 해외전시회 참가 지원과 유사한 지원제도를 정통부 산하기관이 뒤따라 실시하고 있다. 양 부처간 협의가 되지않아 집중의 묘를 살리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교육용 소프트웨어(SW) 관련 분야에서도 교육부 산하 멀티미디어교육지원센터가 이달부터 교육용 SW가 교육활용에 적합한지를 심사하는 교육SW품질인증제를 도입, 시행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들어 정통부 산하단체인 교육소프트웨어진흥센터가 우수 교육용 SW에 「Good SW」 인증마크를 부여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름은 다를지라도 거의 같은 제도를 두 부처의 산하단체가 실시하게 되는 셈이다.

이처럼 최근 신종산업과 관련해 「정책중복」 시비가 일고 있는 사안들에 거의 정보통신부가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정통부가 지난 수년간 의욕적으로 산하기관을 설립하거나 단체 설립을 지원해 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정부가 산하기관, 단체의 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올들어 정보통신부가 설립을 허가해준 게임, 멀티미디어 관련 분야를 포함한 전자, 정보통신 관련 재단 및 사단법인은 모두 17개로 작년보다도 많고 이는 산업자원부 등 다른 부처와는 비교가 안된다.

이는 정통부가 그간 정보화를 주도적으로 추진해온데다 IMF체제에 들어선 뒤에도 첨단산업 및 벤처기업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고, 산, 학, 연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력이 있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문제는 정통부가 각 부문의 정보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설립한 산하기관이나 단체들이 나름대로 생명체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타부처 또는 그 산하기관 및 단체들과의 업무 영역 구분이 모호하거나 「따라하기」성 활동을 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유사단체 통폐합을 강조하는 새정부의 방침과도 맞지 않는 일이다.

물론 관련 업체들로서는 가뜩이나 자금이 궁한 판국에 정부부처나 산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좋을 수도 있겠지만, 정부 산하기관 및 단체간의 이같은 유사 정책 경쟁은 정부부처간 영역싸움을 벌이는 것 같은 인상을 심어줄 소지가 있는데다 예산낭비 및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들게 한다.

최근 발표되고 있는 지원 계획들의 상당수는 산업육성이나 최종 소비자의 권익을 염두에 둔 장기플랜 하에서 이뤄졌다기 보다는 정부 산하기관 및 단체의 통폐합에 대비해 「존립을 위해서는 뭔가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급조됐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선 각 기관 및 단체의 중복업무에 대해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보화 지원」 혹은 「정보화 확산」과 각 부처가 기존에 해온 「업무영역」에 대한 개념을 확립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만일 기존의 영역구분으로 새로운 환경을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산업환경이 바뀌었다고 판단될 경우는 새 틀을 짜고 새로이 역할을 조정하는 것도 과감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존 부처나 산하단체, 기관들도 기존에 뿌리 깊게 관장해온 부분에서까지 산업체들이 새롭게 지원을 표방하고 나선 쪽에 관심을 보이고 매달리는 원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산하단체나 기관은 물론 각 정부부처도 존재의 필요성을 입증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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