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방방곡곡을 숨바꼭질하며 집중폭우를 퍼붓고 있는 게릴라성 호우는 우리 사회의 위기관리 능력을 시험하고 있는 것 같다. 자연재해라는 불가항력 앞에서 이를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로 줄이며 얼마나 이른 시간에 복구를 완료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정부와 국민의 역량이 테스트받고 있는 듯하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풍수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총체적 위기관리 능력은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태풍이나 호우에 강타당하기만 하면 정부는 입버릇처럼 「다시는 이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겠다」고 발표하지만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는 되풀이되고 있다.
최근의 집중폭우에 그나마 돋보이는 것은 통신 부문의 활약이다. 통신 부문은 정보통신부와 한국통신을 중심으로 어느 해보다 재빠른 피해집계와 신속한 복구작업이 진행됐다. 지난 수년간의 노하우를 충분히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일부에서는 당국과 통신사업자에 대한 비난도 있었다. 전국 어디서나 터진다는 휴대폰이 정작 비상시에는 먹통이 됐다는 불만과 복구가 지연되고 있다는 불평까지 제기됐다. 하지만 사업자들로서는 억울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자연경관을 해친다며 기지국 설치를 비판했다가 이제는 그 때문에 비난을 뒤집어 쓰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통신전송로 역시 비용을 아끼라고 다그쳐 도로변 등에 얕은 깊이로 묻은 결과 홍수 한 번에 대거 유실돼 통신망 자체가 다운되기에 이르렀다. 재난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 이유다.
그러면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그리고 다시는 이같은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해답으로 재난 대비 통신시스템과 관리시스템을 국가 차원에서 구축 또는 재정비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번 폭우사태에서 보듯이 통신은 이제 완벽한 국가 인프라임에 틀림없다. 직장은 물론 물놀이 가는 휴가객들의 손에도 반드시 들려 있는 것이 휴대전화다. 더욱이 긴급상황일수록 통신의 중요성이 커진다. 비록 통신 부문이 그동안의 피해를 거울삼아 열심히 노력한 것은 인정하더라도 이는 초보적인 수준이고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근본을 치유하지 않은 채 그때그때의 땜질 처방으로는 인프라 위기관리에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같은 점 때문에 재난, 재해에 대비한 정부 차원의 종합관리시스템이 필요하다. 이에는 법률적 근거와 제도적 뒷받침이 수반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난, 재해시 통신 부문의 지원과 역할을 규정한 체계적 법령이 없다. 지난 95년 제정된 재난관리법이 고작이지만 이마저도 통신 부문에 대한 조직과 업무분장이 명확하지 않다. 또 각종 재난을 미연에 예방, 감시하고 재난상황을 실제로 분석, 통제하기 위한 통신 부문의 실행부서와 통신시스템도 마땅치 않다.
이같은 현실을 감안할 때 미국이나 일본처럼 우리도 국가 재난체계와 연계 운용되는 방재통신시스템의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국가안보를 중심으로 방재통신체계를 운용하고 있는 미국은 대통령 직속의 국가통신시스템(NSC)이 긴급사태 발생시 중요통신 확보를 목표로 각종 통신기관의 통제조정을 담당하고 있다.
일본은 지진과 태풍 등 자연재해에 초점을 맞추고 재난시 통신확보에 나서는 「비상통신협의회」라는 범국가적이면서도 조직적인 운용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중통신사업자와는 별도로 방재무선통신망을 보유하고 있기까지 하다.
게릴라성 호우에 이어 다음달에는 태풍 피해도 우려된다. 이번 수해를 계기로 정부는 천재지변 또는 비상시 통신망 확보와 지원에 대한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과 관리문제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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