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2∼94년 대거 음반업에 진출했던 대기업들이 몇년이 지나지 않은 지금 마치 혹을 떼듯 음반사업부문을 퇴출시키고 있다.
대기업들의 음반업 진출은 SKC가 87년에 물꼬를 튼 뒤 지난 92년 8월 삼성그룹의 제일기획과 삼성전자가 각각 음반사업에 참여한 것을 기점으로 93년에 절정을 이뤄 그해 4월 LG(LG미디어), 7월 두산(오리콤)과 롯데(대홍기획), 9월 현대(현대전자)와 대우(세음미디어)가 얼굴을 내밀었다. 이후에도 95년 새한(새한미디어), 96년 5월 제일제당(CJ엔터테인먼트)이 음반업을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에 진로(GTV), 동아(다비컴 및 동아TV), 현대(KMTV) 등 케이블TV를 운영하는 기업들의 음반업으로의 영역확장 및 신규진출이 잇따랐다.
그러나 96년 하반기부터 침체되기 시작한 음반경기가 IMF체제에 접어들면서 더욱 경색되고, 모그룹이 구조조정을 본격화하면서 음반업이 제1의 정리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 비춰 몇몇 대기업들의 음반사업 정리는 경제한파를 감안한 구조조정작업으로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사업실패에 따른 퇴출이다. 관련 기업들은 음반사업에서 흑자는 커녕 그간의 누적적자를 해소하기도 역부족이라고 판단하는 모습이다. 이대로라면 삼성(영상사업단)만이 유일한 대기업 음반사로 남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 회사 역시 누적되는 적자를 피해가지는 못하고 있다.
자금, 인력, 사업운영능력 등 모든 면에서 기존 중소 음반사들보다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대기업들의 음반사업이 이 지경에 이른 이유는 무엇인가.
업계 관계자들은 『대기업들이 음반사업을 「음반기획업」으로부터 시작했던게 잘못 끼운 첫 단추였다』고 말한다. 음반기획은 프로듀서 1∼2명과 가수들간의 일사불란하고도 밀착된 작업을 통해 이루어지는 데다 리스크가 큰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대기업들이 경험도 없이 과잉투자를 감행하는 무리수를 뒀다는 분석이다. 음반프로듀서(작곡가)와 인기가수를 고액에 스카웃해 음반을 출시했으나 시장에서 참패하면서 적자부담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음반기획은 기존 제작자들에게 맡기고, 원활한 자금동원력을 활용해 전근대적인 유통시장을 개선하는 물류시스템을 갖추는 형태로 음반업에 접근했더라면 최근의 제 살을 도려내는(퇴출) 아픔은 없었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만일 대기업들이 자사 상품을 히트시켜 큰 수익을 창출하려는 「욕심」을 접고 음반유통업을 통한 「안전경영」을 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고, 『음반제작사들을 고사시킨다』거나 『인기가수와 작곡가들의 몸값을 올려놓아 음반업계에 거품을 만들고 있다』는 비난도 피해갔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대기업들이 음반사업의 방향과 경영체제를 바꾸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다만 적자생존의 길만이 남아 있다』는 말이 주변은 물론 이들 대기업 관계자들의 입에서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은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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