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창조] 미디어 링크

(주)미디어링크사는 「벤처업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모범답안을 보여주겠다」며 출발한 네트워크 전문업체. 이 회사는 지난해 1월 한국투자금융(KTB) 벤처캐피털리스트 출신의 하정율 사장(35)을 비롯, 15명의 공동설립자(Co-Founder)가 문을 열 때부터 이같은 슬로건을 내걸어 네트워크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요즘 벤처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젊은 사람이 사장이라거나 첨단 기술만 가졌다고 벤처는 아닙니다. 사장부터 말단직원까지 위험을 부담하고 수익을 분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시작해야 벤처가 되는 거죠. 제가 베테랑 벤처투자가에서 이름없는 신생업체 사장으로 명함을 바꾸게 된 것도 우리나라 토양에서 가능한 벤처의 전형을 한번 만들어 보자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하 사장에 따르면 벤처(Venture)의 원조는 15세기 대항해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매료된 후 값비싼 향료를 찾아 산타마리아호 같은 대양항해선을 탔던 모험가(Adventurer)들이야말로 벤처 1세대라는 것. 선장은 신비의 땅으로 데려다줄 지도와 뱃사람들의 통솔능력을, 선원들은 제각기 바다에 대한 노하우를, 영주는 거대한 선박을 건축할 돈을 댔다. 당시 금화보다 귀했던 후추라도 배에 잔뜩 싣고 돌아온다면 모두들 한몫씩 단단히 챙기겠지만 실패하면 한 푼도 건질 수 없을 뿐더러 십중팔구 목숨을 잃게 되는 아주 위험한 항해였다.

『콜럼버스 선장은 벤처창업주, 선원들은 엔지니어, 이사벨라 여왕과 영주들은 벤처자본가들이었던 셈이죠. 그야말로 위험과 수익을 공평하게 나누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벤처업체의 신화가 잇따라 생겨날 수 있는 저력은 알고보면 나스닥이라는 제도를 통해 그러한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좀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 회사의 출발은 「벤처가 한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가」는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였다』고 자신감을 내비친다.

그의 말대로 미디어링크 사원들이라면 누구나 위험을 분담하고 있다. 미국으로 치자면 최상급(First-Tier)의 벤처캐피털리스트로 활약하던 하 사장은 미디어링크를 출범시킨 후 자본금을 3개월만에 5억원으로 불려 종잣돈을 만들기 위해 KTB시절 10년간 저축한 은행통장과 우리사주, 그리고 살림집까지 처분해야 했다. 양정웅 영업이사와 하 사장의 KTB 후배였던 박태성 실장, 그리고 네트워크 장비 개발경력 7∼8년차의 고급 엔지니어들로 구성된 나머지 14명의 공동설립자 역시 높은 연봉과 보장된 미래를 포기했다. 이들은 회사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회사의 주식지분을 나누어 갖고 있다. 그밖의 직원들도 이 회사가 코스닥에 상장될 3년 후 쯤에는 모두 스톡옵션을 갖게 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처럼 공동운명체로 출발한 미디어링크 직원들은 지난 1년 6개월간 최저 생계비만을 월급으로 가져가며 팀워크를 발휘했다. 하 사장은 전직 벤처캐피털리스트로서의 노하우를 십분 살려 각종 정부지원자금과 개인투자자들을 유치, 투자개발비 30억원 가량을 조달했다. 엔지니어들은 10∼1백Mbps까지 가격경쟁력이 뛰어난 이더넷 스위치 5종과 국산 최초의 ATM 액세스 스위치를 개발했다. 이 중 예고없이 닥친 IMF파고를 넘기 위해 서둘러 개발한 이더넷 제품군은 지난 5월부터 팔려나가기 시작해 올 매출목표 48억원 달성을 가능케 해줄 효자상품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워낙 경쟁이 치열한 이더넷시장에서 미디어링크가 목표로 하는 마켓셰어는 불과 2%. 정작 승부를 거는 핵심기술은 10억원을 쏟아부은 끝에 개발에 성공한 이 회사의 비밀병기 ATM 액세스 스위치다.

미디어링크사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이 열릴 국내 초고속망 구축용 ATM 액세스시장에서 50%선의 점유율을 기대하고 있다. 기술과 가격경쟁력, 마케팅 모든 부문에서 외산보다 앞설 자신이 있다는 것.

이 회사가 과연 유리시스템스, ADC 켄트락스 등 세계적 브랜드를 내세운 외국 업체들과 경쟁해 ATM 액세스 스위치시장의 강자로 떠오를 수 있을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전직원이 철저한 벤처정신으로 무장한 업체가 외산제품의 독무대인 네트워크 장비시장에 도전장을 내미는 만큼 그 결과가 화려한 성공이든 안타까운 실패든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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