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秉燦 한국전자공업협동조합 부장
한국전자공업협동조합은 지난해 11월 북한의 투자환경을 조사하고 전자부품 임가공 사업을 협의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조합이 대북사업을 추진하게 된 배경은 90년대 초반 치솟는 국내 인건비로는 전자부품 제조업이 도저히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고 판단, 중국에 진출한 데 이어 저렴한 인건비로 제조가 가능한 제3국을 물색하던 중 북한을 선택하게 된 것이 그 한가지 이유이고 또 한가지 이유는 지구촌 시대를 맞아 북한뿐만 아니라 인구가 2억이 넘는 중국 동북 3성의 황금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북한지역에 투자해서 임가공 사업을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합 차원에서 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벅찬 일이었지만 95년부터 북측과 꾸준히 접촉해 오던 중 97년 동해안 잠수함사건이 일단락된 후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 회원사 중에서 북한에서 제조를 희망하는 7개사의 원재료를 평양으로 보내고 조립 완제품을 들여와 검사를 하는 과정을 거쳐 작년 10월경 1차로 3개의 컨테이너 물량을 북한으로 보내고 조립토록 한 후 11월 북한을 직접 방문해 조립공장을 시찰하고 전자공업 발전을 위한 향후 남북협력방안을 협의했다.
필자는 이같은 남북경협 사업을 추진했던 실무자의 한 사람으로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새 정부의 정경분리정책은 지속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3년 전부터 추진돼온 조합 차원의 남북경협업무는 정치적 문제와 연결돼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폐돼된 북한을 서서히 개방으로 유도하고 자본주의 이념을 주입하기 위해서는 정경분리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둘째, 현재보다는 미래를 보야야 한다. 우리 일행이 방북시 보았던 평양소재 대동강 공장과 묘향산 근처 청천강 공장의 시설 및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고 특히 전력사정이 좋지 않아 처음에는 과연 제품생산이 가능할 것인지에 의구심을 갖게 됐다. 또 처음 반입된 물품이 50% 이상 불량품이어서 실망도 했지만 일부 시설을 보충하고 자세한 작업지시서를 보낸 결과 지금은 품질수준이 거의 안정단계에 접어들어 미래지향적으로 볼 때 남북경협의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셋째, 경협참여 중소기업에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현재 본 조합이 주관한 남북경협 사업에 참여하는 중소기업은 대부분 언젠가는 판문점을 통한 육로가 열릴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몰이 방북과 금강산 관광에 대한 열망으로 이같은 기대가 더욱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인천-남포 항로를 이용해 물자를 주고받는 데 컨테이너 운송료가 싱가포르 운임보다 훨씬 더 비싸다.
정부 당국에서는 이 문제를 깊이있게 검토해 주길 바라며 이 문제 해결이 어렵다면 남북경협자금 가운데 일부를 남북경협에 참여하는 중소기업에 지원해 줄 것을 건의한다. 무상지원의 일부를 유상지원 차원으로 돌리면 이는 충분히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지원이 정부의 햇볕정책과도 일맥 상통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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