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KIST전산실의 발족-정보산업의 태동 (3)
60년대 말, 그러니까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설립된 66년부터 KIST전자계산실이 미국 컨트롤데이터사(CDC)로부터 초대형 컴퓨터 「CDC3300」을 들여오는 69년 초까지 3년여 동안은 한국의 정보산업이 태동하는 시기가 된다.
물론 한국의 60년대 상황에서 정보산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다시 말하면 정부정책이나 기업(공급자) 또는 고객(컴퓨터사용자) 수요 등 산업의 3요소 가운데 어느 부분도 제대로 갖춰진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60년대말 특히 66년부터 69년까지 3년 동안은 오늘날 한국의 정보산업이 있기까지의 초석이 다져진 시기였다.
3요소 가운데 가장 먼저 기지개를 켠 것은, 당연한 순서이겠지만 고객의 수요였다. 한국의 제1호 컴퓨터 고객은 제1차 경제개발개발계획(62∼66년)추진의 주무부처였던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이었다. 조사통계국은 당시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67∼71년)기간에 활용하기 위해 66년에 실시했던 간이 인구센서스 통계처리를 놓고 고민하던 중이었다. 61년에 도입해서 사용해 오던 천공카드시스템(PCS)으로는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이때 경제기획원 차관 김학렬(金鶴烈)의 긴급지시에 의해 67년 4월15일 미국 IBM사에서 들여온 컴퓨터가 바로 「IBM1401」이다. 국내 컴퓨터 도입 1호이기도 한 「IBM1401」은 트랜지스터를 사용한 제2세대 컴퓨터로서 당시로서도 구식이었을 뿐만 아니라 발표된 지 8년이나 지난 중고(中古)기종이었다.
두번째로 기지개를 켠 것은 컴퓨터 공급회사였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자가 따라 붙는 법. 당시 경제기획원은 「IBM1401」을 도입하면서 IBM측에 두가지 단서를 붙였는데 그 하나는 「IBM 1401」을 당시 가장 인기있던 3세대 컴퓨터 「시스템(S)/360」으로 조만간 교체해줄 것, 또 하나는 「IBM 1401」 도입 즉시 컴퓨터 활용에 수반되는 인력교육과 지속적인 사후지원을 위해 한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한다는 내용이었다. 두번째 조건에 따라 IBM은 「IBM 1401」이 인천세관을 통과한 직후인 67년 4월 25일 당시 미국외 지역을 관장하던 자회사 IBM월드트레이드사를 통해 자본금 4천7백25만원 규모의 현지법인 주식회사 아이비엠코리아(현 한국IBM)를 출범시켰다. 한국 최초의 컴퓨터회사다.
마지막으로 정보산업에 대한 정부정책은 「IBM 1401」이 도입되고 주식회사 아이비엠코리아가 설립된 지 한달 만인 67년 5월 23일에서야 발표됐다. 과학기술처 장관 김기형(金基衡, 현 코모스텔레콤 고문)이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전자계산기 사용 7개년 계획」이라는 것을 공식 발표한 것이다.
정부조직의 하나로서 과학기술처가 발족된 것은 67년 4월 21일의 일이다. 이에 앞서 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개발계획(62∼66년)추진기간에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과학기술정책의 입안과 시행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다. 산업구조 개선과 산업근대화 즉 공업화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지원이 절대 필요했다. 이에 따라 이때까지 정부의 과학기술관련 업무를 맡고 있던 경제기획원은 66년 KIST가 설립된 직후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역사상 정부가 발표한 첫 과학기술정책으로 기록되고 있는 이 계획은 이듬해인 67년 1월 법률 제1864호로 제정된 과학기술진흥법의 모태가 됐다. 과기처는 바로 이 과학기술진흥법에 의해 공식적인 정부조직으로 발족된 것이었다.
초대 과기처 장관에 임명된 김기형은 우선 경제기획원 관할의 KIST를 과기처 직할 조직으로 흡수하는 한편 수십여개에 이르던 과학기술단체들을 모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로의 결성 등을 유도해 나갔다.
김기형이 가히 역사적이라 할 수 있는 「전자계산기 사용 7개년 계획」을 발표한 것은 취임 1개월 기자회견을 겸한 자리였다. 장관 취임 1개월 기념 기자회견에서 당시로서는 매우 생소한 분야였던 전자계산기 관련정책을 발표한 것은 과기처로서도 그만큼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전자계산기 사용 7개년 계획의 골자는 컴퓨터 요원의 양성과 훈련, 소프트웨어의 수출, 컴퓨터에 대한 대국민계몽(컴퓨터마인드의 확산), 컴퓨터의 활용 시기, 컴퓨터 활용에 관한 법적 지원, 제반 계획을 실행할 위원회의 설치 등이었다. 김기형은 이 기자회견에서 67년 현재 세계에는 이미 5만여 대의 컴퓨터가 보급돼 사용되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한국에서도 하루빨리 컴퓨터의 도입과 개발을 촉진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를 위해 「전자계산기 사용 7개년 계획」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성기수를 초대 전산실장으로 영입한 KIST 전산실의 운용방향 역시 한동안은 과기처의 전자계산기 사용 7개년 계획의 테두리 안에서 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KIST전산실의 초창기 운영방향과 당시 한국의 정보산업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전자계산기사용 7개년 계획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알아보기로 하자.
과기처 발족 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부가 추진했던 정보산업 정책들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중 하나는 거의 모든 정책의 입안배경에 컴퓨터의 도입문제가 언급돼 있다는 사실이다. 국산화가 거의 전무한 상황이었던 만큼 외국에서 컴퓨터를 들여오는 문제는 모든 정책의 입안 과정에서 가장 먼저 고려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 60년대 말 국내에 컴퓨터를 들여오는 일은 엄청난 비용이 소요됐을 뿐 아니라 여러 절차와 심사과정이 요구되는 복잡한 업무였다. 지난호에서 설명했던 대로 68년 10월까지 한국에서 컴퓨터를 도입했던 기관이나 기업은 경제기획원, 한국생산성본부, 국립보건연구원, 육군본부, 한일은행, 산업은행, 유한양행 등 통틀어 7군데 정도였다. 이 숫자는 이로부터 꼭 30년 뒤인 98년 현재 국내에 도입된 슈퍼컴퓨터 설치기관(또는 기업)수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참고로 시스템공학연구소(SERI)가 몇년 전부터 추진해 왔던 3천만 달러 규모의 슈퍼컴퓨터 3호기 도입건이 결국은 최근의 IMF구제금융상황과 맞물려 예산부족으로 무산된 것은 좋은 예다. 30년 전 일반 컴퓨터도입은 지금의 슈퍼컴퓨터 도입만큼이나 비용이 많이 들고 까다로웠다는 얘기다.
60년대 말 컴퓨터 도입 비용은 해당 기관이나 기업이 단독으로 충당하기에는 너무 큰 규모였으므로 대개는 차관(借款)이나 정부보유외환자금(KFX) 가운데 하나를 빌어 해결했다. 그런데 문제는 차관(借款)과 KFX를 조달하는 과정이 각각 달랐다는 점이었다. 차관일 경우 도입기관이나 기업이 소속된 주무부처 장관의 추천 승인과 함께 경제기획원 장관(과기처 출범 후에는 과기처 장관)의 검토가 필요했던 반면 KFX는 주무부처 장관의 추천 승인만 있으면 됐다. 예컨대 67년 11월 국립보건원이 미국 스페리(Spery)사로부터 「유니백1005」를 도입할 당시 과기처 장관이 아닌 보사부장관의 추천 승인이 따랐다. 정보산업 관련정책을 총괄하는 과기처로서는 여간한 혼선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는 컴퓨터 한대의 도입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던 시기였다. 국가적 차원에서 도입에 대한 경제성 여부나 구체적인 운용계획이 마련되지 않은 채 컴퓨터를 마구 도입할 경우 막대한 외화낭비는 물론이거나 기술요원과 적용 업무량 부족에 따른 컴퓨터 가동률의 저하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컴퓨터 가동률의 저하는 곧 도입기관끼리 외부용역 수탁 경쟁을 유발시킬 가능성을 안고 있었으며, 이렇게 되면 정부의 전자계산기 용역전문회사 육성 정책은 큰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었다. 용역전문회사는 전자계산기 사용 7개년 계획에서 밝힌 소프트웨어 수출의 첨병이기도 했다.
사실 과기처의 전자계산기 사용 7개년 계획은 처음부터 컴퓨터 도입에 따른 혼선을 시정함으로서 일관된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이 계획에서 과기처는 「전자계산조직 개발조정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것을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전자계산조직 개발조정위원회는 과학기술처 차관을 위원장으로 각계에서 추천한 16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성기수는 67년 9월 당시 KIST전산실장으로 내정되기 직전이었으므로 초창기에는 16명의 위원에 포함돼 있지 않다).
전자계산조직 개발조정위원회의 주요 임무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정보산업 관련 국가정책을 입안하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기업의 경영개선, 업무과학화, 생산성향상 등을 위한 컴퓨터의 종합개발과 활용계획을 수립하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컴퓨터 도입에 대한 사전검토, 개발비(도입비)의 조성과 배분 및 요원 양성 등에 관한 업무가 기본적으로 부여됐던 것은 물론이다. 전자계산조직 개발조정위원회는 전자계산기 사용 7개년 계획이 발표된 지 5개월 만인 67년 9월 27일에 설치, 공포됐다.(전자계산조직 개발조정위원회는 79년 9월 전자계산조직도입 심의기준이 마련되고 이 근거에 따라 전자계산조직도입심의위원회가 새로 설치될 때까지 10년 넘게 존치됐다)
<서현진기자>
많이 본 뉴스
-
1
단독서울시, 애플페이 해외카드 연동 무산…외국인, 애플페이 교통 이용 못한다
-
2
세계 1위 자동화 한국, 휴머노이드 로봇 넘어 '다음 로봇' 전략을 찾다
-
3
국산이 장악한 무선청소기, 로봇청소기보다 2배 더 팔렸다
-
4
CDPR, '사이버펑크: 엣지러너' 무신사 컬래버 드롭 25일 출시
-
5
삼성 파운드리 “올해 4분기에 흑자전환”
-
6
하루 35억달러 돌파…수출 13개월 연속 흑자 행진
-
7
4대 금융그룹, 12조 규모 긴급 수혈·상시 모니터링
-
8
[미국·이스라엘, 이란 타격]트럼프, '끝까지 간다'…미군 사망에 “반드시 대가 치를 것”
-
9
2조1000억 2차 'GPU 대전' 막 오른다…이달 주관사 선정 돌입
-
10
단독신한카드, 3월 애플페이 출격
브랜드 뉴스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