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같은 어려운 일이 마침내 성사됐다. 삼성전자, 현대전자, LG반도체 등 국내 반도체3사가 각사의 이해관계를 떠나 지난달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줄여 나가기로 합의한 것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더욱이 세계 최대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업체인 삼성전자가 이번에 추가 감산을 결정한 것은 용단으로 찬사받을 만한 일이다. 삼성은 금년 말까지 매달 1주일 동안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하는 방법으로 반도체 총 생산량의 30%를 줄인다고 하니 그 효과가 적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달 초까지만 하더라도 반도체 업계는 감산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업체들의 이해가 엇갈려 감산이 성사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그러다가 현대전자가 먼저 1주일간 가동중단 결정을 내리고 삼성전자와 LG반도체가 이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개별업체 차원에서 1차감산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전세계 D램시장의 40%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업체들의 지난달 1차 감산은 전세계 공급량의 10% 가량을 줄였고 그만큼 가격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될 여지를 만들어낸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1차 감산이 이루어지기까지만 해도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감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시기와 방법, 기간, 수량 등에 대해서는 업체마다 입장이 달랐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만의 감산으로 외국업체들에게만 이득이 돌아가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높았다. 그런데도 반도체3사가 이같은 우려를 딛고 1차 감산의 단안을 내렸다는 것은 용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감산 단안의 배경에는 「외환위기를 초래한 것이 반도체 경기를 잘못 읽었기 때문 아니냐」는 지적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반도체 수출부진에 대한 따가운 시선, 반도체 가격의 끊임없는 하락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은 불황이었던 지난해보다도 불투명하다. 세계반도체통계(WSTS)와 같은 시장조사기관은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이 전년대비 1.8%가 감소, 96년에 이어 두번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실정인데 더이상 소극적인 대응으로만 머뭇거리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던 반도체 가격이 더 떨어지지 않는 수준에서 멈춰버렸고 이로 인해 국내 반도체 업체의 채산성은 극도로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배경에 의해 이루어진 1차 감산은 최근 세계 메모리 반도체 스폿시장에서의 가격이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성은 컸으나 파급효과는 비교적 작은 편이었다. 그러나 이번 삼성에 의해 시작된 2차 감산은 그 규모가 큰 데다 타업체로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자금이 투입된 라인을 멀쩡히 놀리는 것은 개별 회사로 보면 큰 손실이다. 그렇지만 현재 반도체 업계가 처한 어려운 상황이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하락 때문인 점을 감안하면 생산량을 줄여야 할 당위성은 이제 더이상 논란거리가 아니다. 특히 수급물량에 따라 경기부침이 심한 메모리 반도체의 특성을 감안하면 현재의 시장상황에서 생산량 조절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서둘러 감산대열에 합류함으로써 세계 반도체 수급상황을 개선, 가격을 정상 수준으로 회복시키는 일이다. 삼성도 추가 감산계획을 서둘러 실행에 옮기고 나머지 두 회사도 장기적이고 대승적인 관점에서 공동 보조를 취한다면 국내 반도체산업은 다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세계 반도체 수급상황의 개선 및 가격 안정화가 우리의 노력으로만 그쳐서는 안된다. 국내 반도체3사는 이제 세계 반도체 경기의 회복을 위해 일본, 미국, 대만에도 공동 보조를 취해주도록 떳떳하고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들의 참여가 있을 때 세계 반도체 수급상황 개선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더욱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 차원에서 반도체협회가 나서 외국 반도체협회와 협력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우리 정부도 이번 반도체 추가 감산을 계기로 세계 반도체 생산국이 공조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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