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430)

요철(凹凸).

승민의한글은 김지호 실장의 말초신경을 자극할 만큼 적나라한 내용들도 있었다. 어쨌든 정보통신을 소재로 한 소설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여자와 남자의 관계도 의도적으로 적나라하게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소설적 구성으로 여자와 남자의 섹스에 대한 이야기가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의 섹스 이야기도 결국은 맨홀 화재를 이끌어 가는 사건의 전개에 결부되어 있었다.

김지호 실장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이 표현된 화재를 상상하며 승민의 원고를 읽어내려 갔다. 계속 통신망 장애에 따른 상황들이 거론되고 있었고, 화재현장인 광화문 부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혼란상황이 현실성 있게 이어지고 있었다. 보통한글이 아니다. 이 정도의 내용을 현실감 있게 쓰려면 대단한 자료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고, 직접 현장의 통신시설을 방문하지 않고는 결코 쓸 수 없을 것이다.

도로 한복판의 맨홀 화재에 의해 교통이 통제되고 부근의 모든 금융기관과 증권가의 온라인이 마비된다. 전화를 비롯한 모든 통신망이 두절되면서 시내는 일대 혼란에 빠진다. 지하에서 일어난 불이 전화선을 타고 번질 것이라는 소문 때문에 모든 사무실에서는 전화기와 팩시밀리의 코드를 빼놓게 되고, 이미 가설되어 있는 선로 때문에 불이 옮겨 붙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중요서류를 밖으로 내놓고 대피하는 내용도 현실성 있게 표현되어 있었다.

화재현장 부근의 맨홀과 연결되어 있는 지하철 1호선과 2호선, 3호선, 4호선, 5호선의 운행이 중단되고, 일반 통신망을 이용하는 교통신호등의 컨트롤 장치도 그 기능을 잃게 되어 신호등이 꺼져버려 도로교통망에도 일대 혼란이 온다. 그뿐만 아니라 가로등의 점멸을 조정하는 통신회선이 두절되면서 사고부근의 모든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게 된다.

한글의 내용은 이제 은행전산망에 관련해 전개되고 있었다. 일동은행이 실명으로 거론되고 있었다.

일동은행.

일동은행이라고 실명으로 표기된 승민의 원고를 보는 순간 김지호 실장은 다시 한번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바로 앞에 있는 금융사고가 발생한 은행으로, 창연오피스텔에서 죽은 여인이 근무하던 은행이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의 단말기를 통하여 50억이라는 현금이 타 은행으로 송금되었고, 그 돈이 어제 모두 현금으로 인출된 바로 그 은행이었기 때문이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