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생각] 공공부문 구조조정

해외 출장을 많이 다니다보니 전 세계의 내노라하는 공항을 자주 드나들게 된다. 다른 나라 공항과 비교해 우리 김포공항도 요즘엔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전반적인 서비스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 특이한 것은 다른 국가의 공항과 달리,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입국절차를 밟기전에 반드시 보안탐색시스템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사람을 검사하는 곳은 김포공항 외에 인도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부분의 공항에서 승객이 비행기에 탈 때 이미 상당 수준의 보안검색을 하므로, 비행기에서 내리는 승객은 기본적으로 보안검사를 통과한 사람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또,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면서 이따금 승객의 화물에서 「삑」하는 경고음이 들릴 때도 있지만, 소리가 났을 때 실제로 그 승객과 화물을 재검사하는 일을 필자는 본적이 없다.

이것은 가장 전형적으로 공무원 세계에 남아있는 관행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공항은 한 나라의 경제, 문화 등 전반적인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첫 관문이다. 그런데 실제 사용자나 검색자 모두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치도록 되어 있는 한국의 공항시스템을 겪으며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의 첫 인상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

관행이 한 번 굳어지고 나면, 설령 그것이 필요없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하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대표적인 예가 아닌가 생각된다.

최근 한 경제지에서 보도한 「교포채용에 18가지 장애물」이라는 기사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 기사의 내용은 한국내 현지법인으로 진출해있는 한 외국기업이 영어에 능통하고 우리나라에서 영업하기 알맞은 재미 교포 한 명을 채용하는데, 한 두 사람이 무려 18단계나 되는 복잡한 절차를 밟아 60일간 전적으로 매달린 끝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재미교포를 처음 채용해본 그 기업의 사장은 대부분의 외국기업들이 한국에서 영업하려면 재미교포가 필요한데, 이렇게 고용절차가 까다로우면 어떻게 영업을 할 수 있겠는가, 출입국 사무소에서 필요한 서류를 전화로 알려주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불만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공무원들의 관행이라는 것은 곧 청산해야 할 권위의식에서 비롯된다. 전화나 팩스로도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을, 전화로 할 수 없으니 담당자가 직접 와서 해결하라, 즉 「목 마른 사람이 샘을 파라」는 식의 고압적인 자세로 접근한다면,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관행은 청산되기 어렵다.

흑자도산하는 기업, 거리로 내몰리는 실직자들과 결식 아동들이 늘어나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재계는 물론 금융권에서 일반 가계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한층 강화된 구조조정을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때에 만약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재계, 금융계의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또 노동계의 희생을 요구한다면 구조조정은 단지 구호에 그칠 것이다. 또, 공공부문의 상층부에서 아무리 개혁의지를 가지고 있어도 하부 실무층이 개혁에 대해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다면, 우리 시대에 절실한 구조조정은 더 이상 화두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 모두 하나가 되어 고통을 분담하며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것만이 살길이다. 공공부문 일선 창구를 담당하고 있는 모든 공무원들도 이제 구태를 벗고 하루 빨리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재벌해체론까지 나올 정도로 강도높은 구조조정이 요구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실제 서비스를 받는 국민들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지금까지 어떻게 시행되었든 과감히 정리하고, 또 당장 필요한 것은 신속히 해결해줄 수 있는 자세가 절실하다.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 모든 구조조정의 노력은 십중팔구 동반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허진호 (주)아이네트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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