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화재가 발생하기 10분전에 이미 전산망이 오프라인으로 되었고, 화재로 인해 원래 전산망이 오프라인으로 된 상황에서 작업이 된 것 같아. 그리고 어저께 그 돈들이 다 현금으로 인출되었어.』
『문제가 된 돈이 얼마나 되지요?』
『50억.』
『50억이오?』
『그래.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되지 않았어. 하지만 사실이야. 문제는 일동은행 전산망이 왜 화재가 발생하기 전에 오프라인으로 변했느냐 하는 것이야. 또 왜 다른 전용회선은 아무일없이 바로 회복되었는데, 일동은행의 전용선은 다른 고장과 연계되어 하루 늦게 회복되었느냐 하는 것이야. 전산망이 오프라인 상태였기 때문에 다른 은행으로 송금한 것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점이야.』
김지호 실장은 횡단보도 앞에 섰다. 긴 시간 짧은 신호. 이곳의 신호등은 그랬다. 2차선의 짧은 거리였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길었고, 보행자신호가 들어와도 중간도 지나기 전에 녹색신호등이 깜박이기 시작할 만큼 신호가 짧았다. 이 신호등을 지나면 청진동쪽으로 들어서기 위해 종로거리를 건널 수 있는 것이다.
『실장님, 돈이 불법으로 송금되었다는 것은 언제 확인됐지요?』
『오늘 아침이야. 어제 늦게 전산망이 온라인으로 되었고, 오늘 아침에서야 화재 당일 다른 은행으로 송금된 50억의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었던 거야. 다른 은행의 계좌로 입금되고, 또 그 돈이 현금으로 모두 다 인출된 것을 오늘에야 확인할 수 있었던 거야.』
『이번 화재가 인위적일지도 모른다는 실장님의 말씀이 확인된 건가요?』
『아냐, 아직은 아니야.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좀더 지나봐야 할 것 같아. 다만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이번 맨홀사고는 일반적인 화재사건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야. 일단 복구작업은 완료되었으니까, 다시 한 번 모든 상황을 면밀하게 검토해봐야 할 것 같아. 공식적인 화재원인은 이미 발표되었어. 사태도 어느 정도 수습되었고. 조심스럽게 점검해 보아야 할 것 같아.』
『실장님, 일동은행의 일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화재사고와 어떤 연계가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고요.』
『그 생각에도 문제가 있어. 이번 화재와 일동은행의 사고와는 어떤 형태로든 연계되었다는 추측은 가능하지만 단순히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이런 큰 사고를 저질렀다고는 생각할 수 없어. 너무 큰 기술이 적용되었어. 보통 기술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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