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청장년층의 대부분은 어린시절 TV 앞에서 가슴을 졸이거나 극장에서 보았던 한 두 편의 애니메이션을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다. 아련한 추억속에서 「아톰」 「마린보이」 「요괴인간」 「마징가 제트」 「밀림의 왕자 레오」 「캔디」 「미키 마우스」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은하철도 999」등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국내에 소개됐던 TV 및 극장용 애니메이션 중에서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은 대부분 일본산 아니면 미국산이었다. 물론 지난 67년 신동헌 감독의 장편 만화영화 「홍길동」이 극장개봉된 이래 「왕자 호동과 낙랑공주」(71년),「로보트 태권V」(77년),「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77년),「독수리 5형제」(80년)등 한국산 애니메이션도 다수 있었으나 작품의 질과 인기도에서 일본, 미국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애니메이션이 「꿈의 상품」으로 인식되던 시절,우리 어린이의 동심이 일본이나 미국 어린이들의 감성에 맞추어지는 꼴이었다.
90년대에 들어선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드래곤 볼」 「슬램 덩크」 「세일러 문」등 일본산 TV용 애니메이션이 국내 가정의 TV수상기들을 점령했고,극장에서는 「알라딘」 「인어공주」 「라이온 킹」 「토이스토리」등 월트 디즈니로 대표되는 미국산 작품들이 고수익을 창출해오고 있다. TV용은 일본산,극장용은 미국산이 국내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올해 초 TV에 방영하기 위해 방송위원회의 심의를 받은 2백6편의 만화영화중에서 국산은 7편으로 3.4%를 점유하는 데 그친데 반해 일본산은 1백61편으로 78.2%에 달했다. 극장에서는 최근 몇 년간 월트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91년),「알라딘」(92년),「라이온 킹」(93년),「포카 혼타스」(94년),「토이스토리」(95년),「노틀담의 곱추」,「헤라클레스」(97년),그리고 20세기 폭스사의 「아나스타샤」(97년)등의 애니메이션들이 어린이 관객들을 유인해 왔다. 올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로 월트 디즈니의 「뮬란」,워너 브러더스의 「카멜롯을 찾아서」,드림웍스 SKG의 「이집트 왕자」 등 미국산 극장용 애니메이션들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들어 「귀여운 쪼꼬미」 「영혼기병 라젠카」 「녹색전차 해모수」 「바이오캅 윙고」등 국산 TV용 애니메이션이 국내 지상파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아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 「해상왕 장보고」 등 국산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꾸준히 제작,상영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산 애니메이션들은 비디오, 캐릭터, 게임, 음반, 테마파크 등 유관산업으로의 수익창구 다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등 산업적 틀이 잡히지 않은 데다,외산에 비해 작품의 경쟁력이 뒤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우리 어린이들의 문화적 충격을 방어해야 한다는 점도 있지만 경제적 가치창출을 위한 애니메이션 산업 진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애니메이션 산업 진흥에 대한 관심증대는 일본과 미국이 세계시장에서 거두어들이는 관련수익이 엄청난 데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일본은 산업적으로 애니메이션이 문화수출의 으뜸 품목이고,미국의 월트 디즈니는 93년작 장편 만화영화인 「라이온 킹」에 4천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9억8천만달러의 수익을 거둔데다 비디오, 음반, 문구, 팬시상품 등을 개발해 추산할 수 없을 정도의 추가 수익을 다년간 거두고 있다는 점에 자극받아 『우리도 부가가치가 높은 애니메이션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외 애니메이션 시장은 시장권역이 포괄적인 탓에 접근하는 방법과 시각에 따라 많은 편차가 있지만 대략 △극장용 애니메이션 흥행수익 △TV용 애니메이션 판권료 △비디오 전용 애니메이션(OVA) 및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비디오 출시로 인한 수익 △OEM 제작에 따른 수익 △케릭터, 게임, 테마파크 등 연관상품의 수익과 로열티 등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같은 기준에 근거,세종대학교 사회교육원의 한창완 교수는 97년 하반기를 기준으로 볼 때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규모는 현재 △필름수출 1천억여원 △신림동 지역을 중심으로 한 동화, 선채화의 임가공 수출 50억여원 △방송사들의 만화영화 판권수출 20억여원 △국내 제작투자 50억여원 △제작진행중인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비 1백억여원 △제작중인 TV시리즈용 애니메이션 제작비 65억여원 △비디오 전용 일본 애니메이션 5백억원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1천여억원 △非디즈니계열 미국 애니메이션 1백억원 △남대문, 세운상가, 용산상가 중심의 추산이 가능한 블랙마켓 1백억여원 등 총 2천9백8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여기에 교차된 상품화권 수익과 중복 계정되는 도소매 판매의 자본,정확한 실체가 파악되지 않는 블랙마켓을 포함할 경우 약 5천억원대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문화관광부의 「97년 문화산업백서」에 따르면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규모는 약 57억달러에 이르고,게임 4백50억달러, 캐릭터 8백억달러, 어린이 TV방송 1천억달러등의 연관산업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문화관광부는 국내시장은 캐릭터,게임 등 유관산업을 합쳐 약 1조5천억원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렇듯 분석방법 및 분석주체에 따라 시장규모 추정치가 편차가 있지만,애니메이션이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경제상품이자 미래형 전략산업」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시장환경은 의외로 간단해 미국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에서,일본이 TV용 애니메이션에서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두 나라가 세계 애니메이션시장의 90%를 양분하고 있는 것이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세계 관련시장의 약 50%를 미국의 월트 디즈니사가 차지하고 있다.디즈니는 지난 37년 「증기선 윌리」로 미키 마우스를 은막에 데뷔시킨 이래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밤비」 「덤보」등의 귀여운 주인공들을 양산하며 30∼40년대를 풍미했다. 50∼60년대에는 TV의 등장으로 잠시 침체기를 겪었으나 지난 89년 「인어공주」로 화려하게 복귀,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뒤늦게 20세기 폭스,워너 브러더스,드림웍스SKG 등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뛰어들면서 미국산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중흥을 예상케 하고 있다.
TV용 애니메이션은 일본이 견고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탄탄한 수요층과 철저한 산업적 구조를 형성한 데 힘입어 세계 관련시장의 65%를 장악하고 있다. 일본은 90년 이후 통상적으로 연간 50편짜리 TV용 애니메이션을 40작품 이상 양산하고 있고,특히 비디오 전용 애니메이션(OVA)의 제작이 활발해 연간 30분물 비디오가 2백개 이상 제작되고 있다.일본산 애니메이션들은 전량 자국내에서 소화되고 있음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세계시장을 해당 국가산 애니메이션보다 저렴한 가격과 흥미를 앞세워 파고들고 있다.
이같은 일본,미국의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선진경영에 맞서 우리나라가 우선적으로 서둘러야 할 일은 「국산작품에 대한 보호 및 지원」으로 귀착되고 있다. 일단 뱁새걸음으로 황새를 좇아가는 형국임을 인정하고,우리의 여건에 맞는 규모의 애니메이션을 양산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해야할 때라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우리나라는 오랜동안 세계 3위의 애니메이션 하청제작국가로서 제작실무 노하우을 쌓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기획, 관리력 부족으로 애니메이션 후진국의 불명예를 벗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따라서 단순한 제작비 지원보다는 기획력 배양,즉 인력양성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새 정부는 애니메이션을 수출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현재 6.4%인 TV만화 방송시간중 국산 방영비율을 오는 2002년까지 45%로 의무화하며,대학에 만화학과를 설립해 전문인력을 양성하겠다는 정책을 밝히고 있다. 이같은 계획이 국산 애니메이션 제작 활성화,수익창구의 다변화,전문인력의 왕성한 활동을 이끌어낼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진다. 정부와 업계의 노력이 결집될 때 만이 일본, 미국과의 격차줄이기가 조금씩이나마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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