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기술을 가진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다. 기술이 없는 기업은 도태하고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업체만이 21세기를 향해 질주할 수 있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첨단기업을 많이 거느린 나라는 강대국으로, 그렇지 못하면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제는 경제 패러다임이 「규모의 저력」에서 「스피드의 파워」로 바뀌고 있다. 덩치만 믿고 안주해온 기업은 발빠른 업체에 선두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따라서 21세기는 대기업보다 기술 및 시장변화에 신속히 대처하는 「벤처기업」이 주도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도 불구, 21세기 우리 경제를 이끌어 나갈 주인공인 벤처기업이 눈앞에 닥친 자금난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애써 개발한 기술을 세상에 내보이지도 못한 채 많은 벤처기업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특히 IMF한파로 이들에게 자금을 지원해 주던 벤처금융이나 창업투자사들이 안전하고 수익성이 높은 금융상품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이 땅에 벤처기업은 뿌리도 내리기 전에 씨가 마르고 있다.
벤처금융이나 창업투자사들이 벤처기업 투자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특히 최근의 경기불황으로 벤처기업의 수익률이 20% 선을 밑돌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벤처란 그야말로 2∼3%의 수확을 얻기 위한 투자이자 도전이지 당장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라는 점에서 당장 이들의 수익률을 따지는 것은 벤처기업에 투자를 아예 안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기업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게 벤처기업의 속성이라는 점을 이들은 참고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초 벤처바람이 불면서 많은 창업투자사들이 벤처기업들에 기술개발에 성공하면 양산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앞다투어 나선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 사재를 털어 기술개발에 전념해 온 벤처기업인들은 빈손만 남는 암담한 현실에 빠져들고 있다. 결국 이들이 개발한 기술은 도산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는가 하면 헐값으로 외국에 팔려나가는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새 정부는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와 시대적 요구에 부응, 1만개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정부의 벤처기업에 대한 강한 의지로 창업열기는 뜨거워지고 있으나 정작 이들에게 투자해야 할 벤처금융사들은 경기불안을 이유로 자금을 풀지 않고 있어 모처럼 일고 있는 기술개발 붐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이대로 벤처기업을 방치해 두었다간 희망찬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새 정부의 1만개 벤처기업 육성과 그에 따른 막대한 창업자금 지원이 일선 벤처금융사들에 의해 차단되는 현실 속에선 머지않아 벤처라는 단어가 이 땅에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다른 자본가들이 신생기업에 투자해 원하는 이윤을 내고 회수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자본가가 마음놓고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기술자도 자본걱정 없이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기술창업은 한층 더 활성화할 것이다.
또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검토하고 있는 기술담보 방안도 기업에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무형 자산인 기술을 검증할 금융기관의 능력이 구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신기술을 담보로 대출해 주는 것보다는 공인된 기술을 보유한 기업의 신용을 담보로 신용대출을 해주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수 있다.
벤처기업들이 기술력을 상품화하기 위한 자금조달의 유일한 창구가 장외시장 등록이기 때문에 이들만의 증권시장을 개설해 많은 벤처금융들이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코스닥이 있다고는 하나 일정 정도 안정된 상태에서만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벤처기업의 천국이라는 미국의 경우 벤처금융이 6백여개사를 넘으며 이들이 한해 투자하는 금액만도 1백억 달러에 이르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외국의 자본이 국내 벤처기업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러자면 정부의 좀더 과감한 문호개방과 규제철폐를 통해 외국 투자사들이 국내에 조속히 진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
경기불황을 이유로 벤처기업이 오갈 데 없는 천덕꾸러기가 되는 날 우리의 미래도 사라지게 될 것이며 정보화 대국으로의 발돋움은 요원한 꿈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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