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크래쉬 「크래쉬」는 스피드와 충돌, 그리고 인간이 느끼는 성적쾌감의 지수를 통해 현대인들의 암울한 병적 상태를 은유하는 영화다. 떠들썩했던 소문처럼 영화는 자극적이고 도발적이며 대담하다. 96년 깐느는 「크래쉬」에 대해 「독창성과 과감성을 갖춘 용기있는 영화」라는 평과 함께 심사위원 특별상을 안겨주었으며 한국은 「인간의 이상심리와 잔혹성 묘사」를 이유로 수입심의 보류 판정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동성애 장면을자진 삭제한 영화사의 「배려」로 개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동차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짝짓기는 새로운 논쟁거리는 아니다. 또한 자신을 타인에게 노출시킴으로써 더욱 성적인 쾌감의 지수를 높이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역시 더 이상대담한 이야기 감은 아니다. 「크래쉬」 역시 이러한 진부한 이야기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영화를 포르노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크래쉬」가 기계문명의 한 단면을 대표하는 자동차에 대한 여피족들의 이상성욕을 통해 표출시키고 있는 잔인하고 극단적인 영상과 메시지다.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빠져드는 주인공들의 성적 결합은 때로 무미건조하리 만치 담담하고 고통스럽다. 그리고 그것은 배우들과 함께 상당부분 이 영화를 지적인 코드로 포장하고 있다.
방송국 프로듀서인 제임스 발라드(제임스 스페이더 분)와 그의 애인인 캐서린(데보라 웅거 분). 둘은 서로의 불륜행위에 자극을 받는 묘한 관계다. 어느 날 발라드는 여의사인 헬렌 레밍턴의(홀리 헌터 분) 차와 충돌 사고를 낸다. 이 사고로 헬렌의 남편이 죽고 발라드는 심한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한다. 그는 병원에서 헬렌과 본(엘리어스 커티스 분)을 마주치게 되고, 그들로 인해 충돌사고가 가져왔던 묘한 자극과 흥분의 실체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자동차의 충돌과 성적인 흥분의 관계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전직 과학자 본은 제임스 딘이 사고로 죽었던 똑같은 상황을 재현하면서 자신의 쇼를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인물. 수많은 사고로 상처가 난 그의 몸은 발라드와 캐서린을 자극하는 또 하나의 성적인 코드다. 본의 여자친구 가브리엘 (로잔나 아퀘드 분) 역시 성적 집착에 의한 고의적인 충돌사고로 다리를 잃은 상태.
물리적, 도덕적 한계의 개념을 넘어 장소와 성별에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이들의 섹스는 점차 자동차로 대표되는 테크놀러지에 의해 종속되고 그것은 이들에게 예견된 또하나의 폭력으로다가온다.
「비디오 드롬」을 비롯한 일련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크로넨버그의 작가적 상상력과 「포르노그라피」가 무색할 정도의 자극적인 섹스 신은 관객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호기심과 도덕성이라는 이중의 가면을 쓰고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다.
<엄용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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