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특집] 계측기기... 국가 경쟁력을 재는 "잣대"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첨단기술을 구현하고 고품질을 확보할 수 있는 계측기기 비중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전류, 압력, 온도, 유량, 질량, 하중, 위치, 레벨, 밀도, 성분 등을 수치와 단위로 표시하는 계측기기는 전쟁터에서 한발 앞서가는 첨병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모든 제품의 생산, 품질향상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최근 들어 전기, 전자, 기계, 컴퓨터 등이 복합된 고부가가치 유망산업으로 급부상한 계측기기 산업은 21세기를 주도할 반도체, 정보통신, 우주, 위성, 항공, 생명공학, 신소재 산업의 경쟁력 확보의 관건이 되고 있다.

중국의 과학자 키안 웨이창 교수는 『항공기는 항로계측기가 없으면 이륙할 수 없으며 국가의 경제 이륙은 계측기 산업의 후원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계측기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볼 때 기술선진국으로 진입하려는 우리나라에 계측기기 산업은 시급히 육성해야 할 산업이며 갈수록 고도화되는 산업기술 발전 흐름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첨단 및 미래형 계측기술 개발이 시급하다.

<편집자주>

국가의 산업경쟁력을 가늠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계측기기의 전세계 시장규모는 7백97억달러. 최근 5년 동안 5.2%씩 성장, 지난해 8백억달러에 육박한 계측기기 산업의 성장세가 이대로 지속될 경우 오는 2001년 전세계 시장규모가 1천2백4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국내 계측기기 시장규모는 36억달러. 지난 95년 30억달러, 96년 33억달러로 형성됐던 국내 계측기기 시장은 매년 5%씩 성장하면서 미국, 일본, 독일 등에 이어 세계 5위권의 계측기기 시장으로 성장했다. 이는 우리나라 전자업체들이 반도체, 이동통신, 멀티미디어 등 첨단산업 육성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을 간접적으로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계측기기 수출규모는 목표액인 3억3천3백50만달러를 밑돌았으며 수입은 지난해 38억달러에 육박하고 전체 수요의 70%를 수입에 의존하는 등 단일산업으로 국내 전체무역수지 적자의 20%에 달하고 있다.

지난해 수출이 둔화된 계측기기는 디지털 멀티미터, 신호발생기, 오실로스코프 등 전자계측기기로 전년대비 약 16% 감소한 5억2천7백50만달러에 머물렀다. 또 유량계와 압력측정기 그리고 재료 경도시험기도 전년 동기대비 각각 47%, 49% 줄어든 5백75만달러, 93만달러를 기록했다.

이처럼 계측기기 수출이 줄어든 것은 대다수 국내 계측기기 생산업체가 범용계측기기 부문에 주력하는 반면 국내외 계측기 수요는 고기능화된 첨단 계측기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기능 품목은 국산제품이 활용되지만 중급 이상의 제품은 대부분 미국, 일본, 유럽에서 수입하는 상황이다.

이를 반증하듯 국내 통신장비 시장이 올해부터 본격 개방되나 계측기기 시장의 경우 이미 외국업체들의 격전장이 된 지 오래다. 국내 계측기업체와 외국업체의 경쟁양상은 상당수의 품목에서 아직까지 절대적 기술우위를 유지하는 외국업체들의 강세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국내 계측기 업체의 기술수준이 외국에 비해 크게 낙후돼 있어 통신 및 방송용 계측기 시장이 호황을 누려도 국내업체들은 옆에서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90년대 들어 폭발적인 무선호출기 성장으로 시작된 이동통신 계측기 시장은 CT2, 셀룰러, TRS(주파수공용통신),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PCS(개인휴대통신) 등으로 이어지면서 급성장하고 있다. 또한 이동통신 시스템이 아날로그방식에서 디지털방식으로 전환되면서 계측기 업체들도 디지털방식의 이동통신기기를 측정하기 위한 기술 개발 및 제품을 출시, 치열한 시장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국내 전자통신 계측기기 시장은 이동통신과 광통신의 급격한 성장으로 미국의 휴렛패커드(HP), 텍트로닉스, 일본의 안리쓰, 독일 로데&슈와르츠 등 주로 미국, 유럽, 일본 등 외국업체들이 고가의 통신용 계측기기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중저가의 경우 LG정밀, 흥창, ED 등 국내 제조업체와 대만, 중국 업체들이 공급을 다투고 있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터 CDMA방식 PCS 기지국, 전파중계기 유지보수 및 단말기 테스트용 계측기기 수요가 급증하면서 HP, 어드밴테스트 등 외국업체들이 국내시장을 독점해 매출이 폭발적인 신장세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계측기기업체는 극심한 국내 경기침체로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 반면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측기 업체들은 매출호조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어 계측기업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국내 무선통신 계측기시장에서는 한국HP가 황금알을 낳고 있는 CDMA PCS용 계측기 시장을 거의 장악한 데 이어 최근 PCS기지국 종합측정장비를 출시하면서 시장독주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독일 로데&슈와르츠사와 일본 어드밴테스트사, LG정밀이 추격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올해도 PCS 사업자들이 기지국 최적화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중소 통신기기 업체들이 상반기 PCS단말기 출시를 목표로 생산라인 구축에 본격 나서고 있어 한국HP와 초기 시장쟁탈전에서 뒤진 것을 만회하려는 후발업체들의 공급경쟁은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올해 미국 HP와 플루크가 전세계에 걸쳐 계측기기 공동판매 제휴를 체결함에 따라 국내시장에 대한 공세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같이 무선통신용 계측기기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이동통신 계측기 렌털도 크게 늘고 있다. 한편 초고속 정보고속도로망 구축계획에 따른 고속 광케이블 네트워크 구축에 맞춰 광통신과 광섬유 관련 계측기기 수요가 증가하고 RF신호의 품질을 확인할 수 있는 벡터신호분석기와 신호수신감도를 측정하는 전계강도계, 유선 통신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광네트워크 측정장비 등의 수요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계측기의 경우 플래시메모리 시장 형성과 IC제조업체들의 마이크로프로세서, 디지털 디바이스, DSP(디지털신호처리) 분야 진출확대, 디지털 및 통신관련 고주파 디바이스 시장 확대 등으로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HD TV와 고가의 OA시스템 생산, LCD 계기반과 ECU 기술과 연계된 자동차부문 수요 등으로 보드검사 장비시장도 증가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PCS를 비롯해 무선가입자망(WLL),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 시스템 및 단말기 개발을 위한 인 서킷(In Circuit) 에뮬레이터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산업 및 공정자동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사용자가 원하는 형태로 각종 센서 및 계측기기가 획득한 데이터를 컴퓨터상에서 측정, 분석, 제어할 수 있는 계측기기 소프트웨어인 가상계측 시스템도 각광받고 있다.

특히 IMF여파로 기업들이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 및 품질향상, 공장자동화, 시설 현대화를 하는 데 있어 계측기기가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자금난에 몰린 국내 통신장비 및 단말기업체들이 더욱 좋은 장비를 좀더 싼 가격에 구매하기 위해 계측기업체들과 팽팽한 신경전을 펴고 있어 계측기기업체의 가격경쟁도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그동안 그늘에 묻혀 소홀히 취급돼온 국내 계측기기산업도 최근 들어 국가 전략산업으로 인식돼 관심과 지원이 늘어나면서 각종 계측기기 생산기술이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고 국내 계측기업체들의 첨단 계측기기 개발 및 국산화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IMF 한파에 따른 극심한 극내 경기침체와 자금난을 감안, 외국 계측기 업체가 확고한 기술우위를 점하고 있는 품목보다 국내외 수요가 많고 조기실용화할 수 있으며 수입대체 효과가 큰 계측기기 개발이 활기를 띠고 있다.

통신용 계측기기 부문에서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 CDMA시스템과 단말기와는 달리 국내에서 아직까지 개발하지 못한 CDMA용 계측기기 개발을 비롯, WLL, IMT2000, 종합정보통신망(ISDN) 및 광원에 대한 분광특성을 분석, 시험하는 광학스펙트럼 분석기도 본격 개발되는 등 광통신계측기 기술개발이 활발해지고 있다.

공업용 계측기기에서는 질량유량계를 비롯, 다공식 유속측정기, 볼텍스 유량계 등의 기술개발 및 상용화를 진행중이며 가격이 저렴하고 설치가 쉬운 초음파 유량계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앞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여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기존 원박스 형태의 계측기기에서 탈피, 그동안 외국 계측기기 업체들이 주로 공급해온 모듈 및 PC일체형 계측기기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

반도체용 계측기도 그동안 국산화된 제품이 적어 무역 적자요인이 되고 있으나 보드테스터, 영상처리용 비전시스템 등이 개발됐다.

그동안 고가 수입장비에 의존해온 3차원 측정시스템도 지난해 국산화됐고 수질 및 대기오염 측정장비도 속속 개발에 성공했다.

이와 함께 국내 계측기기 산업육성 및 산학연 계측기기 공동연구와 기술지원을 담당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부설 계측기기연구센터가 지난해 정식 출범, 산업계에 계측기술을 이전하는 데 본격 나서고 있다.

이러한 분야로는 광전자 측정기기, 반도체 검사기기, 정보통신계측기기, 마이크로 프로세서 개발지원시스템, 계측제어시스템, 환경공해측정기 등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업체들은 그동안 확보한 상당수준의 중저급 제품 생산기술을 무기로 국제 경쟁력있는 분야로 품목을 특화, 외국업체가 주도하고 있는 국내외 계측기기 시장에서 경쟁력을 얻고 있다.

전류와 전압, 저항 등을 측정하는 디지털 멀티미터(DMM)의 경우 국산제품은 플루크 등 외산에 근접하는 기술 및 제품력을 확보하고 있고 해외시장에서도 상당한 성가를 얻고 있다. 한편 경기회복에 따른 설비투자가 증가하고 있는 미국, 일본, EU 등지에서 최근 들어 고정밀, 고부가가치형 환경계측기기, 항온항습기 등에 대한 수출상담이 증가하고 있어 수출증가가 기대된다.

또한 최근 외환사정 악화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지역 국가들이 석유화학공업 분야에 설비투자를 확대하면서 유량계, 레벨계, 자동계측시스템 및 환경계측기기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수출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한편 이같은 국산화 및 기술개발 움직임과 관련, 업계 전문가들은 정확도, 신뢰도가 높은 고부가가치 품목 중심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특히 국내 경기가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국내수요가 큰 품목을 우선적으로 개발하는 내수위주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울대 박철순 교수는 『국내 계측기기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우선 사업전략에 있어 저가형 제품생산 전략에서 탈피, 고성능, 고정밀, 다기능 계측기기 생산을 목표로 하는 단계별 전략을 수립, 집중투자를 해야 한다』며 『그러나 현 국내 기술수준에서는 단기간에 이를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선진기업과의 전략적 기술제휴가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온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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